식품물가로 본 팍팍한 민생

▲ 가난한 사람일수록 신선식품보다는 가공식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신선식품 가격이 가공식품보다 높은 건 당연하다. 국제 생활물가 비교사이트인 ‘익스패티스탄(Expatistan)’를 분석해봐도, 신석식품의 가격대가 월등히 높다. 문제는 가공식품의 가격인상 속도가 신선식품보다 가파르다는 점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에겐 좋지 않은 소식이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있다. 요즘도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에게 그런 조언을 종종 한다.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연구결과가 한둘이 아니라는 걸 감안하면 딱히 맞는 말도 아니다.

왜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오래 살까. 지난 3일 영국의 ‘시티 유니버시티 런던’ 연구팀은 한 지역에서 특정 연도에 사망한 이들의 나이를 비교ㆍ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수명 격차가 늘고 있다”는 밝혔다.

연구팀을 이끈 레스 메이휴 교수(카스 비즈니스 스쿨)는 “이런 차이는 수십년에 걸친 소득불평등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이들은 나쁜 생활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면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건강한 생활방식을 택할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에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는 1920년생 남성과 1950년생 남성이 각각 50세 됐을 때의 기대수명을 비교, 소득 상위 10%의 기대수명은 79.1세에서 87.2세로 늘었지만 하위 10%의 기대수명은 72.9세에서 73.6세로 큰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 연구소도 그 원인을 ‘생활방식의 차이’로 설명했다. 경제적 지위에 따라 일상생활의 수준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평균 수명이 영향을 받는다는 거다.

국내 사과값 세계 1위

흥미롭게도 이런 가설은 생활물가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제 생활물가 비교사이트인 ‘익스패티스탄(Expatis tan)’이 그 근거를 제공한다. 이 사이트는 세계 현지 소비자가 직접 구매한 생필품 가격의 평균값을 제공한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식비ㆍ주거임대비ㆍ의류비ㆍ의료비 등 항목도 다양하다. 해외여행이나 유학 등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꽤 유용한 사이트로 통하는 이유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우리나라의 식비와 식료품 구입비다. 5월 초 현재 익스패티스탄 통계(평균치)에 따르면 서울의 일반적인 점심값(상업지역의 쌀밥 식사 기준)은 7700원이다. 반면 패스트푸트(햄버거 등)는 5733원이었다.

식자재의 경우, 치즈(500g)는 9414원, 사과(1㎏)는 8293원, 뼈 없는 닭가슴살(500g)은 5672원, 토마토(1㎏)는 4275원, 달걀(12개입 1판)은 3731원, 감자(1㎏)는 3426원, 우유(일반우유 1L)는 2380원, 코카콜라(2L)는 2562원이다. 종합해서 보면, 신선식품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각국의 물가수준을 배제하고 단순 비교했을 우리나라의 사과값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을 정도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한국소비자원 등의 통계도 익스패티스탄과 엇비슷하다. aT와 한국소비자원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소비자가공식품의 경우, 식빵(1㎏)이 5000원, 소시지(1㎏)가 1만8480원, 라면(5개입)이 3539원, 생선통조림(1㎏)이 7130원, 과일통조림(황도 1㎏)이 4335원이었다. 반면 신선식품의 경우는 돼지고기 삼겹살(1㎏)이 2만170원, 쇠고기(1등급 등심 1㎏)이 8만4060원, 딸기(1㎏)는 6405원이었다. 신선식품이 가공식품보다 훨씬 비쌌다는 거다.

신선식품이 가공식품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호주머니 사정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한다면 가난한 사람은 가공식품을 더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결국 잘 먹는 게 건강의 첫번째 전제조건이고, ‘식생활의 차이’를 식품가격이 좌우한다는 걸 감안하면 가난한 사람일수록 신선식품을 많이 먹지 못해 평균수명도 짧아질 가능성이 있다.

가공식품 가격 상승세 훨씬 높아

더구나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비양극화 지수는 지난해 167(2007=100 기준)이었다. 1994년 조사 이래 최고치다. 소비양극화 지수는 소비생활에 따라 상ㆍ하류층을 구분하고, 상류층 대비 하류층을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하류층 수준의 소비생활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떠들어봐야 가난한 이들에게 ‘100세 시대’는 그림의 떡일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최근 5년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 추이를 볼 때 가공식품의 가격 상승세가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신선식품의 물가지수(2010년=100)는 2010년 대비 2015년에 10.9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같은 기간 각종 통조림(육류ㆍ생선ㆍ과일), 냉동식품, 즉석식품, 육류가공식품 등 가공식품은 21.4포인트나 올랐다. 신선식품보다 2배나 더 많이 올랐다는 얘기다. 그 가운데서도 과일통조림(38.5포인트 상승)의 상승폭이 가장 컸다. 가난한 사람은 가공된 과일조차 쉽게 먹지 못한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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