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기업 회사채 왜 급등하나

조선ㆍ해운업계가 ‘죽음의 바다’에 빠지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들 기업의 회사채 가격은 급등세다. 개인투자자들이 적극 매입한 결과다. 해당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채는 휴지조각이 될 텐데, 이런 무모한 투자를 단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금리에 있다.

▲ 실적악화 및 업종불황 등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의 회사채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정부가 취약업종 구조조정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업종은 해운ㆍ조선업계다. 정부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자율협약 진행을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조건으로 ‘용선료 협상’을 내세웠다. 이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행行이라는 강경한 원칙까지 세웠다.

조선업계도 상황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채권단 자율협약을 받고 있던 중견 조선사인 STX조선해양은 법정관리행이 정해졌다. 대형 조선 3사도 조만간 주채권은행과 협의를 끝내고 자구계획을 확정해 강도 높은 자체 구조조정에 돌입할 예정이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STX조선해양의 자금 사정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들 기업의 회사채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매입을 서두르고 있어서다. 5월 25일 기준 현대상선186 회사채 가격은 5300원으로 한달 전인 4월 25일 4603원보다 15.1% 올랐다. 같은 날 한진해운71-2 회사채 가격은 한달 만에 20% 가까이 상승하면서 5002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현대상선 회사채의 신용등급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를 뜻하는 D다. 한진해운 회사채는 B-로 투자부적격, 이른바 정크 등급 채권으로 분류된다. 조선업종도 마찬가지다. 대우조선해양5-2 회사채는 전일 대비 149원이 오른 7949원에 거래가 마감됐다. 이 회사채의 신용등급도 투기등급인 BB+다.

구조조정 기업 회사채에 투자자들이 몰리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이들 기업이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회사채는 언제든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수 있어서다. 구조조정 진행 경과에 따라 투자수요가 급감하면 현금화도 어렵다. 운이 좋아 해당 기업이 채무조정ㆍ자율협약 수준에 그치더라도 원금보장을 장담할 수 없다. 채권단이 회사채 투자자들에게도 손실 부담을 떠안길 수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5월 17일 “몇몇 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부 투자자를 중심으로 투기성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며 “손실을 스스로 져야 하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리스크에도 투자자들이 구조조정 기업의 회사채를 적극 매입하는 건 10%가 훌쩍 넘는 금리 때문이다. 저가 매수를 통해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기대도 투자를 부추기는 요소다. 무엇보다 기간산업인 이들 기업을 ‘정부가 설마 망하게 내버려 두겠어’라는 마음에 투자를 단행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리스크가 해운ㆍ조선 업계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한계기업에 신新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적용해 이전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될 공산이 크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나 한계기업의 회사채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투자 리스크가 제대로 고지되고 있는지, 부당권유행위는 없는지 감시ㆍ감독이 필요한 이유다.

임정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는 한계기업 정리와 구조조정 강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막상 정부 정책을 보면 방향성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회사채 시장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혼란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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