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보험제도의 사각지대

휴대전화 보험가입자 수는 773만명에 이른다. 이들이 내는 연간 보험료는 3000억원이 훌쩍 넘는다.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면서 관련 보험시장도 활력을 얻은 셈이다. 그런데 중고폰과 해외직구 휴대전화는 가입 대상이 아니다. 보험사 측은 “고객의 모럴해저드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당한 주장일까.

▲ 보험사 관계자는 “휴대전화 보험은 허위 분실 신고를 걸러내기 힘들어 손해율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 한달 전 최신 스마트폰을 구매한 직장인 A씨.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선택하니 자동으로 휴대전화 보험에 가입됐다. 그로부터 20일 후 요금제를 변경한 그는 보험을 해지했다. A씨가 선택한 저렴한 요금제는 보험료 지원이 안 돼 보험을 유지하려면 보험료를 추가로 납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워낙 고가인데다 약정기간에 무사히 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고민하던 A씨는 2주 만에 보험에 재가입하려고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그런데 고객센터 관계자는 이상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개통 30일이 지나서 재가입이 안 됩니다.”

# 직장인 B씨는 국내에선 출시가 늦어 오래 기다려야 하는 스마트폰을 해외직구로 구매했다.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위해 이동통신사 대리점을 찾은 그는 휴대전화 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다. 해외에서 구매했기 때문에 신제품이라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스마트폰은 이제 ‘단순한 기기’가 아니다. ‘손 안의 PC’라 불릴 만큼 기능이 다양하고 많다. 당연히 가격도 비싸졌다. 우리나라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은 특히 비싸다. 지난해 최원식 의원(국민의당)이 2011~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주요국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의 추이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고가 휴대전화 가격은 기간 내 33%나 올랐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중고폰’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이유다.

중고폰 막는 ‘보험 장벽’     

국내 한 중고 사이트의 올해 1분기 거래 빈도수 카테고리를 보면 의류, 상품권에 이어 휴대전화가 3위에 올랐다. 중고폰 판매 사이트의 한 관계자는 “중고폰은 가격이 저렴한데다 최초 개통 후 1년이 되지 않았다면 무상수리를 받을 수도 있어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해외직구를 통해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증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격 거품을 뺀 단말기를 구입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중고폰이나 해외직구를 통해 구입한 휴대전화는 보험상품 가입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KT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해외직구폰의 가입을 허용했지만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원천차단’한 상태다.

이통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중고폰은 이전까지의 수리 이력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입이 불가능하다. 해외직구로 구입한 휴대전화는 신제품인지 중고폰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보험가입대상이 아니다.” 또 다른 이통사 관계자는 “휴대전화 보험은 이통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에서 설계한 것을 이통사가 중개해주는 것뿐”이라면서 “고객들이 휴대전화 보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중개 수수료도 받지 않고 어디까지나 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보험사가 휴대전화 보험의 장벽을 높여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보험사 측은 소비자의 ‘모럴해저드’를 그 이유로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처리를 요구한 고객 중 40% 정도는 분실 신고로 새 폰을 보상 받는데, 허위신고 여부를 알기 어렵다”면서 “새로 산 휴대전화도 상황이 이런데 중고폰이나 해외직구 폰은 오죽하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휴대전화 보험이 처음 출시됐을 당시 300~400%에 달하던 손해율이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100%를 넘는다”면서 “휴대전화 보험은 약관의 허점을 이용해 보험사기를 치는 블랙 컨슈머가 많아 자꾸 보험료가 인상되고 약정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몇몇 소비자의 양심 없는 행동에 다른 고객들이 피해를 볼 확률이 커서 아예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거다.

하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고객을 위해 시작한 보험 서비스를 고객 때문에 확대할 수 없다는 논리라서다. 더구나 보험사가 손해율이 100%에 달하는 휴대전화 보험을 없애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입자가 770만명을 훌쩍 넘는 휴대전화 보험시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휴대전화 보험 가입자는 773만명을 넘었다. 이들이 내는 연간보험료는 3224억에 달한다. 4년 전인 2011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휴대전화 보험, 정말 안 남나

지난 9일 금융당국은 휴대전화 보험료를 차등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보험료를 내는 아이폰 사용자와 비非아이폰 사용자가 다른 서비스를 받기 때문이다. 아이폰 사용자는 수리 대신 ‘리퍼폰’으로 보상받는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휴대전화 구입 경로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보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고폰과 해외직구 휴대전화는 고객을 믿을 수 없어 보험의 혜택을 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지도 않는 서비스를 고객을 위해 유지한다’는 보험사의 변명이 불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다은 더스쿠프 기자 eundak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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