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 왜 살려야 하나

언젠가부터 먹는샘물은 필수 먹거리가 됐다. 수돗물 불신 풍조가 만연하면서다. 이젠 ‘산소’가 먹거리로 떠오른다. 대기오염이 심화하면서 고농도 산소를 농축해 캔에 담은 ‘산소캔’까지 등장했다. 물·산소 등 공공재 없는 세상이 열린 셈이다. 문제는 정부의 부실한 대처다. 공공재의 명맥이 끊기고 있지만 당국은 ‘부가가치 없는 의제’만 내놓고 있다.

▲ 올해 들어 미세먼지 농도가‘나쁨’수준을 보인 날이 많아지자 산소캔 판매량도 증가했다.[사진=뉴시스]

공공재의 공공성이 희미해지고 있다. 물에 이어 산소까지 상품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다. 글로벌 전략평가 연구기관 윈터그린 리서치(Wintergreen research)는 지난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세계 휴대용 산소발생기(공기 중 오염물질과 질소를 제거하고 산소만 발생시키는 장치) 시장이 2021년까지 22억 달러(약 2조6026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이유로 갈수록 짙어지는 대기오염 농도와 고령화 등을 꼽았다.

휴대용 산소의 대중화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소캔의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쇼핑사이트 G마켓에 따르면 지난 1월 1일~4월 28일 산소캔 판매량은 2013년 동기 대비 2.5배가량 증가했다. 물뿐만 아니라 산소마저 판매·소비의 대상이 되자 한편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소득에 따라 물과 산소를 사서 마실 수 있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으로 나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공공재 사용 여부가 빈부貧富를 가르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런 시나리오가 등장한 원인이 정부에 있다고 지적한다. 동종인 서울시립대(환경공학) 교수는 “미세먼지 측정기준이나 정확도의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는 신통치 않은 답변만 하고 있다”면서 “여기서 기인한 불신과 불안이 산소캔 등 상품 구매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공공재를 원료로 만든 상품을 신뢰할 수 있느냐다.

‘먹는물’의 사례를 살펴보자. 먹는물의 신뢰성은 바닥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상품 관리가 부실한 게 첫째 이유다. 박소연 수돗물시민네트워크 교육홍보팀장은 “대형마트를 제외한 중소마트나 편의점 등에선 생수를 건물 밖에 쌓아 놓고 판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플라스틱통이 직사광선을 받으면 환경호르몬이 나올 수도 있고, 통 안에 담긴 물 성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생수 수원水原의 수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도 한계다. 박 팀장은 “생수의 수원이 대부분 지하수인데, 국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없는 기업이 돈과 시간을 들여 수원을 관리할 이유와 의무가 없지 않겠는가”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문제는 먹는물 제조업체의 ‘모럴해저드’다. 지난해 환경부와 서울서부지검은 최근 5년간 ‘먹는물관리법’ 위반 전력이 있는 업체 37곳을 대상으로 위법 여부를 재조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품질검사 미실시(9건), 계측기 규정 위반(9건), 취수정 수질기준 초과(4건) 등이 또다시 적발됐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산소 관련 상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생수 관리기준이 수돗물보다 느슨하다. 여기에 빗대보면, 산소 관련 상품의 기준도 대기환경보다 느슨할 가능성이 높다. 공공재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공공재를 공공재답게 만드는 게 해법이자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빈부 가르는 지표 ‘공공재’ 

그렇다면 우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관계 부처는 공공재의 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서울시는 시에서 관리하는 수돗물을 ‘아리수’로 명명하고 세계 1위 수준의 깨끗한 수질을 홍보하고 있다.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 관계자는 “시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녹슨 배관의 경우 현재 시에서 관리하는 공용배관은 97% 교체가 완료된 상태”라며 “가정용 배관도 교체를 신청하면 교체비용의 80%를 시에서 지원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리수의 신뢰성은 기대치를 한참 밑돈다. 아리수를 맘놓고 마시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서울시의 노력이 수돗물의 신뢰를 회복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거다. 박소연 팀장은 “공공기관 곳곳에 음수대를 설치해 공무원들이 생수 대신 수돗물을 마시는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공재인 대기大氣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대기의 오염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5년 국내 연평균 초미세먼지(세계보건기구가 1급 발암물질로 규정) 농도는 26.5㎍/㎥로 국내 관리기준(25㎍/㎥)과 세계보건기구의 대기환경기준(10㎍/㎥)을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해 인하대병원과 아주대 연구팀은 “수도권 지역 30대 사망자 중 1만5000명이 대기오염 때문에 조기 사망했다”고 발표하면서 “미세먼지가 원인이 돼 폐암에 걸리는 환자 수가 연간 1400여명”이라고 밝혔다.

▲ 앞으로는 돈이 없으면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럼에도 대기오염 수준을 낮추려는 정부 당국의 노력은 눈가리고 아웅 수준이다. 충남·강원·경남 등지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증설하겠다는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대표적 사례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초미세먼지 농도를 높이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관련 예산이 부족할 가능성도 높다. 환경부는 ‘제2차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2015~2024년)’에 의거해 총 4조원의 예산을 배정 받았지만 10년에 걸친 예산집행기간과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부족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대기 오염 정도 괜찮나 
    
대체에너지 정책을 환경부가 아닌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담당하는 것도 문제다.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정책팀장은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보듯 정부는 국민보다 기업 눈치를 더 살핀다”면서 “정부와 학계 연구자들이 기업 눈치보기식 관행을 탈피해 국민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환경대책을 세워야 대기오염 수준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공공재가 신뢰를 잃으면 혈세를 투입할 수밖에 없다. 혈세를 투입한 수돗물 정화작업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고 소비자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믿을 수 없는 수돗물이 아닌 생수를 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어야 한다. 산소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 당국이 대기를 관리하는 데 실패하면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고, 소비자는 산소캔을 사기 위해 유리지갑을 열 게 뻔하다. 정부 당국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공공재를 살리는 게 결국 복지福祉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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