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진화의 명암

▲ 편의점 서비스 확대가 점주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편의점 서비스가 팔색조 변신 중이다. 공과금 대납, 택배신청 대행, 치킨집에 이어 이번엔 첨단정보통신기술의 집약체로 옷을 갈아입었다. 덕분에 소비자의 생활 속 편의성은 증대됐고, 본사 매출도 계속 증가세다. 하지만 정작 점주들의 속은 까맣게 타고 있다. 잡무는 늘었지만 수익은 증가하지 않아서다.


중학생 박민정(가명·16)양은 요즘 걸스데이 혜리와 도시락을 먹는 재미로 학원 근처 세븐일레븐을 찾는다. 편의점 안 스마트 테이블에는 사용자가 눈으로 보는 현실세계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증강현실 기술이 적용돼, 혜리와 나란히 앉아 함께 밥 먹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대학생 김철민(가명·21)씨는 GS25 ‘나만의 냉장고 서비스’에 푹 빠져 있다. 합리적 소비가 가능해서다. GS25 애플리케이션(앱)에서 1+1행사 상품을 구입한 뒤 ‘냉장고’에 넣어 두면, 실제 행사 기간이 끝나도 언제든지 편의점에서 상품을 찾아갈 수 있다. 시험기간엔 CU 배달 서비스를 이용한다. CU 앱이나 홈페이지에서 1만원 이상 물건을 사면 40분 이내에 원하는 장소로 가져다 준다.

편의점이 팔색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이번엔 ICT기술이 집약된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변신은 편의점이 유통채널 중 유일하게 가파른 성장률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편의점은 지난 2월에도 전년 동기보다 31.4% 성장했다. 회사별 매출도 늘었다. BGF리테일(CU)의 올 1분기 매출은 1조922억원으로 전년 동기(8842억원) 대비 23.5% 껑충 뛰었다. GS리테일(GS25)도 1조5976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동기(1조3233억원)보다 20.7% 성장했다. 같은 기간 백화점이 1.9% 성장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하지만 편의점 점주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편의점 본사에서 추진하는 각종 서비스가 점주들에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서울시 용산구에서 5년째 편의점을 운영 중인 한 점주는 “맥주캔이 널브러져 있는 테이블을 치우고, 닭을 튀기고, 택배를 받고, 커피까지 내리다 보면 매대에 상품을 진열할 시간도 없다”면서 “매출에 도움이 될까 싶어 본사가 제시한 새로운 서비스들을 도입한 건데 되레 적자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4월 아르바이트생 한명을 고용했다.

서비스 늘자 본사 실적 껑충 

얼마전 도입한 택배 서비스 때문에 골치를 앓는 또 다른 점주도 사정이 딱하긴 마찬가지다. 서울시 중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그는 “편의점에선 택배상자를 받아 맡아뒀다가 택배 기사가 방문하면 전달해주는 대행서비스를 해주는 건데 자꾸 송장번호나 배송상황을 묻는 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분실사고 발생 시 점주와 택배업체간에 벌어지는 배상 책임 공방도 골치 아픈 문제다. 지난 5월 황금연휴 기간엔 택배 대행 주문이 그야말로 폭주했다. 그는 “편의점 일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아 결국 택배 단말기에 ‘고장’ 딱지를 붙였다”고 털어놨다.

본사에서 권장하는 모바일 할인쿠폰도 점주들에겐 계륵 같은 존재다. 할인상품의 정상가와 할인가 차액 중 절반을 가맹점에서 부담해야 해서다. 쿠폰 사용량이 증가하는 만큼 점주 부담률도 높아지는 셈이다.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2년째 편의점을 운영 중인 한 점주는 “쿠폰을 쓰려고 편의점을 찾는 손님이 늘긴 했지만 정작 손에 쥐는 돈은 없다”고 말했다.

▲ 편의점 서비스가 첨단정보통신 기술까지 이용하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1+1행사 상품이나 할인상품만 잘 팔리는 것도 점주들에겐 고민거리다. 같은 종류 다른 브랜드의 재고량의 늘어나기 일쑤라서다. 반품도 쉽지 않다. 본사가 반품액 한도를 원가 15만원까지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점주가 껴안게 되는 재고량만 증가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서비스가 앞으로 더 다양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주요 편의점 본사는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론칭하고 있다. CU는 미래에 편의점 공간 일부에 계좌개설·보험가입이 가능한 창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GS25도 편의점도 공간 한쪽에 소비자가 가상으로 옷을 걸쳐볼 수 있는 가상 피팅체험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세븐일레븐은 롯데백화점과 제휴한 픽업로커 서비스를 주요 직영점을 통해 시범운영 중이다.

신규 서비스 vs 신종 불공정 거래

하지만 이런 신규 서비스는 신종 ‘불공정 거래’일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물론 편의점 본사는 가맹점에 신규 서비스 도입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점주 입장은 다르다. 도입하지 않으면 계약 연장 때 불이익을 당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박지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간사는 “불공정 갑을계약을 빌미로 본사가 가맹점에 사업 밀어넣기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벤트식 서비스가 아닌 점주와 소비자에게 실직적인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준인 전국편의점가맹점사업자단체협의회 회장은 “편의점 업계 활성화를 위해 서비스 품목 개발은 필요하다”면서도 “하지만 물건 원가와 판매가를 낮추는 게 소비자가 편의점을 찾게 하는 가장 좋은 유인책이자 서비스”라고 말했다. 그는 “편의점 물건 원가는 소매점인걸 감안해도 다른 유통채널에 비해 꽤 높은 편이다”고 꼬집었다. 본사와 점주, 소비자의 상생을 도모할 진짜 서비스는 따로 있다는 얘기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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