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사태의 불편한 진실

▲ 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 연루된 전·현직 국회의원 중 혐의가 인정돼 처벌을 받은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사진=뉴시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기억하는가. 그 이후 터진 ‘게이트급 저축은행 사태’는 또 어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 그 사건’이라며 기억을 더듬을 것이다. 그만큼 이 사태는 전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비리혐의자는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 2011년 2월 17일, 부산저축은행 본점 앞에 수백명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부산저축은행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6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당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예금이 걱정된 예금자 200여명은 겨울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은행 셔터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예금 지급 계획이나 관련 소식을 설명해주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수신액 9조1954억원, 여신액 7조108억원, 총 자산은 9조9088억원으로 국내 저축은행 총 자산(84조원)의 12%를 차지하던 업계 1위의 부산저축은행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건실한 저축은행인 양 영업을 하던 부산저축은행의 민낯은 추악했다. 부실을 감추기 위해 2조4533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자행했고 5060억원을 불법적으로 대출했다. 대주주는 고객이 믿고 맡긴 돈 4조5942억원을 자기 돈처럼 사용했다.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3만143명, 피해액은 2882억원에 달했다. 그 중 2만7196명은 5000만원 초과 예금자이고, 나머지 2947명은 후수위채권을 매입해 피해를 입었다.

저축은행 사태의 원인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때, PF대출로 재미를 톡톡히 본 부산저축은행은 만족을 몰랐다. 특수목적법인(SPC)를 직접 설립해 각종 개발사업에 발을 담갔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이 설립한 SPC는 120개에 달했다. 사업에 투입된 자금 4조5942억원은 고객의 예금에서 당겨썼다. 사외이사와 감사는 ‘있으나 마나’였다. 이를 감시해야 할 금융당국자는 물론 정ㆍ관계인사는 부산저축은행의 불법적 행태를 모른 척했다. 부산저축은행 측이 학연ㆍ지연ㆍ로비 등을 총동원해 ‘눈가림’을 꾀했기 때문이다.

부산저축은행에서 불이 붙은 저축은행 사태는 업계 전체로 번졌다. 검찰은 2011년 9월 22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산하에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합수단)’을 설치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무려 545일 간 진행한 조사 결과, 검찰은 저축은행의 대주주와 경영진, 직원 등 23명을 기소했다. 돈을 받고 저축은행의 뒤를 봐준 정관계 인사 21명과 감독기관 공무원 22명도 기소했다. 이를 포함해 합수단이 구속기소한 이는 62명, 불구속 기소자는 75명에 달했다. 또한 관련자로부터 환수한 책임재산은 6564억원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합수단이 해단한 이후 부산은행저축과 관련 기소된 이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논란이 된 저축은행의 몇몇 대주주와 경영진의 판결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게 전부다. 검찰 관계자는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 해단한 이후 수사 결과를 업데이트하지 않았다”면서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피의자도 있어 전체적인 결과는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사태를 꼼꼼하게 추적하지 않은 건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였다. 한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주요 정치인의 판결 결과는 업데이트하고 있다”면서도 “기소 인원이 방대하고 일일이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어 자세한 결과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수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정관계 인물은 합당한 처벌을 받았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기소된 12명의 전ㆍ현직 국회의원 중 처벌을 받은 인사는 단 4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실형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1년2개월 선고)이 유일하다. 나머지 세명의 전ㆍ현직 국회의원은 적게는 2000만원 많게는 6000만원의 불법 자금을 받았지만 500만~800만원의 벌금형만 받았다.

저축은행 연루자, 처벌 제대로 받았나

저축은행 감독기관 공무원의 처벌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대표적인 사례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27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전 금융위원회 과장 A씨다. A씨는 2010년 4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6차례에 걸쳐 뇌물을 받았다. 특히 저축은행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2011년 9월에도 영업정지 유예기간을 연장해 달라는 명목으로 금품을 받았다. 또한 임 회장의 구속 소식을 듣고 뇌물로 받은 돈 2700만원(5만원권 540장)을 집 근처 야산에 묻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A씨를 2012년 8월 22일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A씨는 2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2013년 열린 2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이 깨졌다. 더 놀라운 건 감형 이유다. 재판부는 “재판부는 “A씨는 뛰어난 업무능력으로 촉망받는 공무원이었다”면서 “서민금융지원제도 도입을 위해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헌신적인 자세로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판결했다.

▲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피해자는 여전히 보상을 받지 못했다.[사진=뉴시스]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형량을 낮춰줬다는 얘기다. 하지만 A씨는 2014년 국내 대형 로펌인 ‘김앤장’에 취업한 것으로 알려져 또다시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처럼 ‘저축은행 사태’는 도도한 세월을 이기지 못한 채 서서히 잊히고 있다. 문제는 피해자의 고통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5000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투자자는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6월과 10월에 ‘예금액 6000만원까지 보상하고 불완전 판매가 인정된 후순위사채 피해를 보상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포퓰리즘이라는 비난 때문이었다.

2012년 2월 여야가 합의한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도 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발언과 금융당국의 반대에 부딪혀 빛을 보지 못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2012년 당시 총선 이슈와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논란이 합쳐지면서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의 통과가 무산됐다”며 “다른 금융투자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로펌 취업한 뇌물 받은 공무원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지 벌써 5년이 됐다. 하지만 ‘저축은행 사태’에 전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2011년, 2012년 이후 우리는 이 사건을 잊었다. 소 잃고 외양간은 제대로 고쳤는지, 또 다른 리스크는 없는지,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사건이 터지면 들불처럼 일어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는 우리나라의 고질병이 또 도진 셈이다. 저축은행 사태 5년을 복기復棋할 때다. 그래야 제2ㆍ제3의 부실뇌관에 불이 옮겨붙지 않는다. 더 늦으면 또다시 큰 사건이 터질지 모른다. 부실과 비리는 가까운 데 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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