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❸

▲ 영화의 화두는 평원의 현자인 인디언이 던진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는 연기력과 매력적인 외모를 모두 갖춘 흔치 않은 배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휴 글래스)와 톰 하디(피츠 제랄드)라는 두 명의 걸출한 배우가 이끌어간다. 특징이라면 모두 공인받은 꽃미남 계열 배우라는 거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들의 수려한 외모를 찾을 수조차 없다. 철저히 망가지면서 오로지 연기력으로 승부한다. 이 영화의 또다른 미덕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휴 글래스와 피츠 제랄드가 끌어 나간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적인 화두는 의외로 단역에 불과한 인디언이 던진다. 회색 곰에 몸이 짓뭉개지고 동료인 피츠 제랄드에게 배신당해 버려지고, 아들까지 죽임을 당한 휴 글래스는 원한에 이를 갈며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피츠 제랄드를 추격한다.

그 과정에 인디언을 만난다. 그의 신세도 휴 글래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인디언 부족에게 가족들을 모두 잃고 혼자 남아 자신의 부족을 찾아 고난의 행군 중이다. 인디언 늑대 떼가 사냥해서 먹을 만큼 먹고 남겨두고 떠난 들소의 내장을 허겁지겁 먹는다. 온몸에 들소피로 떡칠을 하고 있던 그때 자신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오며 먹을 것을 구걸하는 휴 글래스를 만난다.

백인인 휴 글래스를 경계하던 인디언은 휴 글래스의 ‘몰골’과 상태를 파악하고는 경계심을 푼다. 그리고는 인심 좋게 들소의 내장 한 덩이를 던져준다. 짐승의 사체 뼈 골수까지 빼먹으며 생명을 부지하던 휴 글래스는 오랜만에 포식하고, 생명을 보장받는다. 휴 글래스는 보답으로 사투를 벌여 죽인 곰 발톱을 선물한다. 인디언은 휴 글래스의 원한을 듣고서 자신의 사무친 원한을 들려주고 깊은 가르침을 내린다. “나의 심장은 찢어진다. 그러나 복수는 창조주의 손에 맡긴다(My heart bleeds. But revenge is in the Creator’s hands).”

▲ 휴 글래스는 원한을 잊지 않기 위해 바위에 글을 새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휴 글래스에게 망가진 육신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원한의 고통이다. 어쩌면 그는 마음의 고통을 자초하는지도 모른다. 바위에 ‘피츠 제랄드가 나의 아들을 죽였다(Fitzgerald killed my son)’는 글을 새기며 원한을 잊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 그에게 인디언의 가르침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준다. 모든 것을 ‘저장(storage)’해 뒀다가 미래에 꺼내 쓰려는 인간의 욕망이 자신을 해치고 모두를 해치고 결국 공멸한다는 거다.

늑대들이 들소를 사냥해 먹을 만큼만 먹고 떠나지 않고, 먹고 남은 것을 끌고가 어디엔가 ‘저장’했다면 인디언도 굶어죽고 휴 글래스도 굶어죽었을 것이다. 인디언은 먹을 만큼만 사냥한다. 그것이 인디언의 사냥 법칙이다. 필요 이상의 것을 저장하려들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결국은 자신들도 죽는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인디언은 휴 글래스에게 우리가 생명을 유지할 만큼만 먹고 나머지의 처분은 창조주의 손에 맡기듯 모든 기억을 쌓아두고 부질없이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지 말아야 하는 지혜를 전한다. 미국 민권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우리가 모든 원한의 기억을 ‘저장’하고 그 해결책으로 택하는 ‘상응 보복의 원칙’의 소모성과 파괴성을 경고한다. “만약 우리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eye for eye, tooth for tooth)의 원칙을 따른다면 이 세상에 눈과 이를 가진 사람은 남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 사회의 사자와 호랑이들은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지나 3대가 먹고 살 것을 ‘저장’하기 위한 사냥에 여념이 없다. 우리 사회의 사자와 호랑이들에게 ‘레버넌트’에 등장하는 늑대들의 사냥과 미래를 창조주의 손에 넘기는 인디언 히쿡의 깊은 성찰을 권하고 싶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속에서 프랑스 백인들은 ‘평원의 현자’ 히쿡의 목에 ‘나는 야만인입니다’는 죄목을 걸어 나무에 매달아 죽인다. 문명의 승리가 아니라 야만의 승리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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