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끈 달아오른 전기차 시장

▲ IT기업들이 전기자동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시장의 판도를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사진=뉴시스]
세계 각국 정부가 ‘전기차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자 글로벌 기업들은 물론 자동차 부품업체들까지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힘을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은 예외다. 전기차 보조금은 이미 줄였고, 완속충전기 지원금은 줄일 계획이다. 우리 정부, 왜 ‘역주행’을 택한 걸까.

1913년 자동차 역사에 획을 긋는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 자동차회사 포드(Ford)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다. 이 시스템은 자동차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 포드의 ‘T-모델’은 하루 9109대씩 생산됐는데, 당시로선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자 사치품으로 취급 받던 자동차는 소득 증대와 맞물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됐다. 

최근 몇년 사이 세계 자동차 산업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또 하나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전기배터리가 100년 넘게 자동차 산업을 이끌던 내연기관의 지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연비와 이산화탄소 규제를 강화하는 국가가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덩달아 전기차 시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사실 전기차 시장은 미국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완성도 높은 양산 모델을 내놓으면서 개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기차 시장의 포문은 미국의 GM이 1996년 먼저 열었다. GM이 전기차를 만든 건 규제 때문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당시 자동차업체에 전체 판매 차량 중 일정 비율만큼을 무공해 차량으로 판매하도록 ‘배기가스 제로법’을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GM이 처음 개발한 전기차 EV1의 성능은 매우 좋았다는 점이다. 완전 충전까지 4시간이면 충분했고, 1회 충전으로 160㎞를 달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전기차 산업 발전 속도가 느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기차가 GM과 정유업체 등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유업체 입장에서 전기차는 가솔린 소비를 줄이는 주범이었다. GM 입장에서도 전기차를 생산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했다. 결국 업계의 반발로 ‘배기가스 제로법’은 2003년 사라졌고, EV1 생산라인은 폐쇄됐으며, 생산된 EV1도 모두 폐기 처리됐다.

그렇다면 요즘 전기차 부흥을 이끄는 자동차 업체는 어디일까. 흥미롭게도 전기차 산업을 주도하는 곳은 기존 업체가 아니다. 테슬라ㆍBYD(중국)ㆍ구글ㆍ애플 등은 자동차와 무관한 기업이다. 이는 매우 큰 변화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지난 수십년간 신규 기업의 진입이 거의 없었다. 엔진 설계와 제작 기술, 대규모 설비투자와 마케팅 비용 등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연기관이 필요 없는 전기차는 엔진 제작 기술보다는 센서ㆍ소프트웨어ㆍ카메라ㆍ2차전지가 핵심이다.
이는 기존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큰 위기를 맞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구나 내연기관 자동차부품 수는 2만~3만개 정도지만, 전기차는 6000~7000개에 불과하다. 많은 부품이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될 경우 내연기관에 특화된 부품업체들은 생존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컨설팅업체 프리스케일은 “자동차 원가에서 IT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 35%에서 2030년 50%로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품업체도 전기차 시장 진출

실제로 전기차 시장에선 새로운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떠오르고 있다. 중국 인터넷 기업 바이두는 무인자동차와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고,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도 무인 전기차 개발을 시작했다.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 델파이는 자동주행 자동차를 제작, 2015년 3월부터 미국 횡단 주행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애플도 2020년 자동주행 전기차 아이카(icar) 생산을 목표로 한 ‘타이탄(Titan)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이런 상황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다.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A기업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 확대를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는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이런 추세는 한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산업을 전망하는 일부 기관도 전기차 시장이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전기차 산업이 아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점, 충전소 등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 등이 근거다. 일본 시장조사기관 B3는 “세계 전기차 시장이 2013년 394만대에서 2020년 1045만대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 연간 생산량이 8600만대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낮은 예상치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의 성장성을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무엇보다 전기차 가격이 빠르게 조정되고 있다.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3는 기존 모델S의 절반 가격인 3만5000달러다. 기술 혁신도 눈부시다. 제로백 5.2초, 한번 충전시 360㎞를 주행하는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했다. 혁신적인 디자인과 IT기술은 덤이다. 그 결과, 테슬라의 모델3는 예약판매 시작 1주일 만에 32만대 이상 예약됐고, 14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미국시장 기준 2015년 베스트 셀링카 도요타 캠리 판매 대수가 36만대였다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열풍이다.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정책적으로 전기차를 택했다. 철강ㆍ조선ㆍIT에 이어 전기차 시장에서도 우리를 위협할 것이다. PHEV(하이브리드카와 전기자동차의 중간 단계) 차량까지 포함하면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2015년 18만5000대에서 2020년 182만대로 10배가량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강국 독일도 전기차 산업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2020년까지 전기차 판매를 100만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전기차 산업에 10억 유로 투자, 전기차 구매자에게 4000유로 지원과 세제 혜택, 3억개의 충전소 건설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다.

2004년부터 전기차 보급에 주력해 왔던 노르웨이는 PHEV와 전기차 판매가 전체 신차의 60%에 달한다. 전기차 보급률은 세계 1위다. 시내에는 무료 전기충전소가 설치돼 있고, 최근 유료 충전이 가능한 급속충전기를 늘리는 중이다. 전기차 확산을 통해 탄소배출량을 2020년까지 절반으로 줄인다는 게 노르웨이 정부의 목표다.

산유국도 전기차 산업 미는데…

하지만 우리 정부의 행보는 이들과 다르다. 정부는 전기차 급속충전기 사용료를 지난 4월 11일부터 ㎾h당 313원씩 부과했다. 전기차 보조금은 15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줄었다. 완속충전기 지원금도 6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줄일 계획이다. 정부가 전기차 보급에 따른 유류세 감소를 우려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이상한 정책들이다.

자동차 산업의 가치사슬은 전기차로 인해 변하고 있다. 그 소용돌이에서 어떤 정책을 택하느냐에 따라 우리 자동차 산업이 힘을 받을 수도, 반대로 잃을 수도 있다. 산유국인 노르웨이도 전기차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하물며 산유국도 아닌 우리나라가 전기차에 소홀한 이유는 무엇일까. 냉정하게 그 답을 찾아볼 때다.   
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www.barunib.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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