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체온」

드라마 촬영장에서 대규모 치맥 파티를 여는 등 침체 상태인 내수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관광업계의 큰손. 2016년 한국인에게 중국인은 곧 유커遊客로 대표된다. 하지만 이런 벼락부자 이미지는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된 단면일 뿐 진짜 중국과 중국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반론도 많다. 그렇다면 진짜 중국과 중국인은 어디에 있나.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널리 알려진 쑨 거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중국 서민의 삶과 생활에서 중국과 중국인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에세이 「중국의 체온」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격변기를 살아가는 중국 서민의 일상을 상세하게 풀어냈다. 또한 서구가 걸어온 근대화의 틀에서 중국을 분석하려는 것도 비판한다.

책 속의 스물다섯편이나 되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키워드는 ‘서민’이다. 쑨 거가 바라본 중국 서민은 개혁개방에도 맹목적 소비문화를 거부하고 전통과 조화를 꾀하는 역동적인 사람들이다. 이것을 잘 드러내는 게 바로 ‘산채山寨 문화’다. 이 문화는 일종의 모조품 문화로 흔히 생각하는 짝퉁이나 해적판과는 다르다.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게’ 만들어 저렴하게 유통된다.

저자는 서민들이 ‘단종된 자신의 휴대전화 배터리를 산채판으로 바꾸면서 시장경제 이후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이런 소비경향은 빠른 제품 변화에 ‘저항’하는 서민의 생활양식이며 자본주의의 ‘속도’ 개념에 대한 문제제기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도 서민의 시각에서 풀어낸다. 양안兩岸의 역사와 정치적 쟁점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보단 중국과 대만 사이에 위치한 진먼섬金門島(금문도)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준다. 진먼섬은 중국 패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 시기 최후의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쑨 거는 이 섬 주민들이 쓰는 ‘욕’을 통해 전쟁의 상흔을 읽어낸다. ‘포탄으로 만든 칼’을 굴 채취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을 통해선 평화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일본과의 관계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중국 TV드라마에 등장하는 일본인 캐릭터를 통해 중국에서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일본인 이미지를 포착한다.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문제로 양국이 한창 시끄러웠을 때도 흔들리지 않은 중·일 서민 간의 유대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중국 역사는 왕조 교체로 이뤄져 있지만, 왕조의 몰락으로 중국이 망한 적은 한번도 없다”면서 “평범한 생활인인 중국 민중이 늘 자기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숱한 정치·사회적 폭력을 온몸으로 견디며 일상을 지켜낸 중국 서민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때 느껴지는 묘한 감동이 책의 매력을 배가한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