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식 갖고 있는지 진지한 성찰 필요

▲ 직업과 역할 구분뿐만 아니라 소비 영역에서도 성별 차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핑크색 와이셔츠를 즐기는 남성이 있는가 하면, 격투기장에서 격하게 환호하는 여성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성별性別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한 노력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면 곱씹어볼 점도 있다.

매년 누드나 최소한의 옷을 걸친 유명 모델들의 사진을 찍는 데 집중하던 플레이보이 잡지와 피렐리 캘린더(Pirelli calendar)가 2016년 판부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여성들의 신체적 아름다움보다 그들의 힘이나 성취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플레이보이지는 지난 3월부터 더 이상 여성들의 누드를 싣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피렐리 캘린더는 누드 대신 잘 알려진 여성 12명의 옷 입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달력을 만들었다. 피렐리의 CEO 마르코 트론체티 프로베라는 이런 변화가 여성다움 또는 남성다움의 구별이 모호해지는 현대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직업과 역할만이 아니라 옷차림, 헤어스타일, 장난감 선택과 소비 영역에서도 성별 차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업이나 유통업체는 이런 변화에 맞춰 제품 라벨에 여성용, 남성용 구분을 없애기 시작했다. 가령 디즈니사는 지난해 10월 할로윈 시즌 때 판매한 할로윈 복장에 아동용이라는 표현 외에 어떤 성적 구분도 포함하지 않았다. 아마존닷컴도 아동용 장난감을 판매할 때 성별 구분에 관한 어떤 표현도 사용하지 않는다.

장난감 리뷰 사이트인 타임투플레이맥닷컴의 짐 실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를 원하는 수많은 소녀들과 손쉬운 빵굽기 놀이를 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소년들을 알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어떤 장난감은 특정 성별에 적합하다’는 식의 표현이 아무 도움도 되질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녀들이 전통적인 성별 역할을 고수하지 않길 바라는 부모들은 특히 아동용 장난감과 의류 선택에 민감하다.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냐에 따라 자녀의 미래 진로선택이나 책임감, 활동성 등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영국의 3살배기 아들의 아빠인 폴 핸슨은 최근 ‘겨울왕국’의 엘사공주 드레스를 입은 아들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성별을 구분 짓지 않는 것은 성인도 마찬가지다. 마크 제이콥스나 에르메스 같은 명품 브랜드에서는 여성적 요소와 남성적 요소를 믹스한 유니섹스룩 디자인을 내놓는다. 이런 흐름은 아웃도어용품이나 운동화, 스마트 워치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몇 년 동안 패션이나 외모에 신경 쓰는 남자를 지칭하는 ‘메트로섹슈얼’ 열풍이 불었다. 남성용 화장품이 나오고 남성용 요리 레시피도 등장했다. 한편으로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는 여성이 늘었다. 이종격투기 경기장에 환호하는 여성 관객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생각해볼 게 있다. 이런 변화가 부당한 성별 정형화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냐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외모를 가꾸고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트렌드일까. 우리는 성별에 따른 장난감 선택이나 직업 선택, 역할 부과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기나 한 건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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