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합의 없는 성과제 도입 괜찮나

▲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노사합의를 거치지 않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게 불법이 아니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정부가 ‘노사 합의 없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법률자문을 받아본 결과, 불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법률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노사 합의 없는 성과연봉제 도입’의 진실을 풀어봤다.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공기관ㆍ공기업 23곳(5월 30일 기준)이 노사합의 절차를 생략하고 이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진화에 나섰다. “노사합의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 의결을 통해 공공기관ㆍ공기업의 성과연봉제를 진행하는 건 불법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불법이 아니라는 법률자문까지 다 받았다(5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재정전략협의회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하지만 일부 법률전문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노사 합의를 안 거친 성과연봉제 도입이 어떻게 합법이냐는 의문에서다. 만약 유 부총리의 주장에 빈틈이 있다면 박근혜 정부는 ‘당사자와의 합의 과정을 생략한 채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밀어붙인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를테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힘’을 사용했다는 거다. 이번 사안이 법률적 다툼의 소지가 없는지 확실히 짚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먼저 정부 관계자의 구체적인 주장을 들어보자. “성과연봉제를 노사합의 없이 진행해도 불법이 아니다.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의 변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성과연봉제로 이익을 얻는 이도, 불이익을 받는 이도 있다. 성과연봉의 총량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거다. 이는 불이익이 절대 아니다. 더구나 근로기준법보다 우선하는 공무원법이나 공기업법에는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조항이 없다. 공공기관ㆍ공기업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때 노사합의를 거칠 필요가 없는 이유다. 행여 법원이 불법이라 판단하더라도 성과연봉제 적용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사안이다.”

정부가 내세운 ‘합법의 근거’는 대략 세가지다. 첫째,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게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취업규칙의 변경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공무원법과 공기업법에 취업규칙 변경 관련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성과연봉제 도입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언뜻 그럴듯한 주장으로 들리지만 빈틈이 무척 많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공공기관ㆍ공기업의 성격이 크게 달라서 ‘일괄적으로 불법이다 아니다’를 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서부발전, 중부발전, 남동발전, 부산항만공사, 철도시설공단 등은 시간외수당ㆍ복리후생수당ㆍ성과급(상급직) 등에 성과연봉제를 적용했다.
이 방식은 성과에 따라 ‘기본 연봉’이 변하지 않아 ‘플러스섬’으로 불린다. 이를테면 기본 연봉이 아닌 ‘플러스 알파’ 재원으로 연봉을 차등 지급한다는 얘기다. 누가 더 받느냐의 문제지, 기존 연봉이 깎이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 경우엔 노동자 합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해도 괜찮을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이 아니라서다.

반면 성과에 따라 기존 연봉이 달라지는 곳도 있다. 공기업ㆍ공공기관 15곳이 이 방식을 택했다. 이는 전체 연봉을 성과에 따라 재산정하기 때문에 ‘제로섬 방식’으로 불린다. 이 경우엔 다툼의 여지가 적지 않다. 일부 노동자가 손해를 봐서다.

법률자문 취사 선택한 정부

실제로 공기업ㆍ공공기관 15곳 중 6곳만이 “노사합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추진해도 괜찮다는 법적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나머지 9곳 중 4곳은 의견이 엇갈렸고, 3곳은 어떤 자문을 받았는지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1곳은 자문을 받지 않았고, 1곳은 문제가 있다는 자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노동법률사무소의 양지웅 변호사는 “기본 연봉에 성과주의를 도입하는 건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면서 “대법원도 판례를 통해 그렇게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시민의 김선수 변호사는 “제로섬 방식은 명백히 일부 노동자의 불이익이 예상되고, 이는 ‘전체 노동자에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이다”고 잘라 말했다. “노사합의를 거치지 않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해도 불법이 아니다”는 유 부총리의 말을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로기준법보다 우선 적용되는 공무원법이나 공기업법에 취업규칙 변경 조항이 없어 노사합의 없이 성과주의를 적용해도 괜찮다’는 정부의 주장에도 반론이 잇따른다. 김선수 변호사는 “공무원법이나 공기업법에는 근로기준법 94조를 배제하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근로기준법을 준용해야 옳다”면서 “정부와 공공기관ㆍ공기업들이 법률자문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게 아닌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제이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전병우 변호사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재직 여부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사 합의 절차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면서 “공기업법이나 공무원법이 해당 노동자의 노동법상 권리를 정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취업규칙 변경과 관련해서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성과연봉제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는 정부의 주장에도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법무법인 DLS의 이성희 변호사는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 등 여러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성과연봉제 시행은 충분히 타당해 보인다”면서도 “그럼에도 각 공공기관별 분석데이터를 통해 합리성을 인정받아야지 구체성이 없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명분으로 제시해선 곤란하다”고 꼬집었다.

양지웅 변호사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그냥 인정되는 게 아니다”면서 “각 기관마다 상황에 따라 이를 인정받아야 하는 만큼 소송을 통해 법원으로부터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의 김형동 변호사는 “법률은 절차를 중시하는 것이고, 법률이 아닌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결과를 중시하는 것”이라면서 “버젓이 있는 법률을 뭉개고 변칙적인 개념을 적용한다는 건 결과가 좋으면 쿠데타까지 괜찮다고 하는 거랑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면서 “불법이 아니라면 괜찮다고 말하는 정부를 그냥 두면 무슨 근거든 갖다 대서 원하는 걸 뭐든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호창 호서대(법학) 교수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건 원래 불이익 취업규칙의 변경에 관한 규정이 없던 일본의 판례에 처음 나왔던 개념”이라면서 “굳이 근로기준법이 취업규칙의 변경사항을 뻔히 정해놓고 있는데, 그걸 준용하지 않고 우리 판례도 아닌 것을 금과옥조처럼 끌어안을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전병우 변호사는 “15년 전인 2001년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근거로 노사합의 없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을 인정했다”면서 “다만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94조의 입법 취지를 고려해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적용은 제한적이고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명시했고, 실제로도 고려사항을 많이 두고 있어 적용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노사합의 없는 성과연봉제의 강행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럼에도 무리수까지 둬 가면서 정부가 밀어붙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하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집권자의 의지가 워낙 단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말한 지난 4월 22일 이후 공공기관ㆍ공기업의 성과연봉제 확대 실시가 급물살을 탔다. 특히 공공기관들은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성과연봉제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5월 2일 금융위원회는 기관 예산 승인권을 앞세워 성과연봉제를 조기 도입하지 않는 금융공기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공문을 9개 금융공기업에 보내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공기업의 성과연봉제 도입시 노사합의’를 강조하던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방침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 공공부문 개혁도 법 절차를 무시해선 안 된다.[사진=뉴시스]
5월 12일에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브리핑을 열어 “노조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며 논의를 거부하는 것은 동의권 남용”이라면서 노조의 성과연봉제 반대를 비판했다. 그 뒤 23일에는 정기준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이 노사합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추진하는 게 가능하다는 발언을 내놨다. 지난 26일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이 연장선에 있다.

민의 반영하지 않은 정부 행보

문제는 이런 정부의 고집스러운 행보가 민의民意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5월 20일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여야 정치권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지난해 노사정 합의대로 기준을 마련해 노사합의를 거쳐 진행한다”고 합의했다. 4ㆍ13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구도가 실현되면서 오랜만에 이뤄진 협치協治의 결과물이었다. 국민들도 이를 보면서 ‘이제야 뭔가 좀 돌아가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협치를 박 대통령과 정부가 “노사합의 없이 진행하라”면서 뒤엎은 셈이다.

물론 일부 공공기관ㆍ공기업이 제 밥그릇만 챙겨온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방만경영을 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건 마땅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고 절차를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여도 된다는 건 아니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거든 눈에 보이지 않는 공적 업무의 결과물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그 기준부터 세우는 게 순서다. 정책의 명분은 힘이 아니라 합의에서 나온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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