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처벌보다 중요한 건 도덕적 기준

▲ 대법원은 의사능력에 문제가 있다면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밝혔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대출을 받는 서민이 갈수록 늘고 있다. 대부분 자신의 사업이나 가계를 위해서지만 지인이나 친척 등의 부탁으로 대출을 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언어와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어 합리적 판단이 어려운 의사무능력자를 이용한 대출이다. 이런 대출행위는 효력이 있을까.

아들의 사업자금이 필요했던 C씨. 그는 A씨에게 차용증을 써주고 돈을 빌리기로 했고, A씨는 응했다. A씨는 자기 소유의 집을 담보(근저당 설정)로 B은행에서 5000만원을 대출 받아, C씨에게 빌려줬다. 

사실 A씨는 판단능력에 문제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열병을 앓은 후 언어와 정신적 장애를 겪게 됐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신체감정 결과 지능은 64. 정신지체의 범주에 속하는 지적 능력 수준이다. 사회적 연령은 7세, 의사소통 영역은 5세 내지 6세 정도에 해당됐다. 일상적인 질문에는 말로 답을 못하고 동작으로만 ‘예, 아니오’를 하는 수준이었다.

어찌 됐든 돈을 빌린 C씨는 아들에게 대출금을 줬고, 관련 이자를 B은행에 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C씨는 이자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아들의 사업이 어려워진 탓이었다. B은행은 당연히 A씨에게 이자를 독촉했고, A씨의 가족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급기야 A씨의 가족은 B은행을 상대로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의사무능력자인 A씨의 행위는 무효라는 이유에서였다. 의사능력은 자기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수준을 말한다. 의사능력이 없는 자의 법률행위는 무효다. 의사능력이 있는지 여부는 각각의 법률행위를 검토해 판단한다. 

A씨는 대출거래 약정, 근저당권 설정의 법률적 의미와 책임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없었다. 이에 따라 대출거래약정과 근저당권 설정계약은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체결된 것으로, 무효다. 계약이 무효면 법률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미 행위가 이뤄진 상태라면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으로 간주돼 부당이득이 된다. B은행으로선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말소해야 한다는 거다.

그럼 B은행은 대출금 5000만원을 상환받을 수 있을까. 민법 제41조를 보자. “취소한 (법률)행위는 처음부터 무효로 본다. 다만 행위무능력자는 그 행위로 인해 받은 현재의 이익을 상환할 책임이 있다.” 행위무능력자에게 발생한 현재의 이익만 반환하면 된다는 얘기다. 대법원은 여기에 의사무능력자도 포함했다. “의사능력의 흠결을 이유로 법률행위가 무효가 되는 경우에도 유추 적용된다.” 의사무능력자 역시 현재의 이익만 반환하면 된다는 거다.

그렇다면 A씨에게 현재의 이익이 있을까. A씨는 돈을 받아 C씨에 전액 대여했다. 대출금 자체가 모두 소비돼 이익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B은행은 대출금 5000만원을 돌려받을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C씨의 차용증을 근거로 이렇게 판결했다.

“A씨는 C씨에게 빌려준 돈의 채권(차용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A씨에게 발생한 이익은 채권의 형태로 존재한다. B은행은 이 채권의 양도를 구할 수는 있다.” B은행이 A씨에게 ‘차용증’의 양도를 요구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차용증을 양도받았더라도 C씨에게 재산이 없다면 아무런 실익이 없다. B은행만 땅을 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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