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 이코노미의 망상

대리운전을 떠올려보자. 애플리케이션만 깔면 언제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다. 피곤하면 집에서 쉬어도 괜찮다. 이렇게 좋은 시절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은 이를 이렇게 포장한다. 공유경제, 온디멘드, O2O, 긱 이코노미…. 그런데 알고 있는가. 이런 유형의 노동자들이 가장 기본적인 권리도 누리지 못할 공산이 크다는 것을….

▲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이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긱 이코노미가 고용시장을 흔들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현대의 일터는 변했다. 고용은 더 이상 단일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 맺어지는 명확한 관계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깊게 벌어지는 바위틈처럼 일터도 지난 30년간 균열을 겪었다.” 데이비드 와일 미국 노동부 행정관의 저서 「균열일터」는 기업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기업이 회사 테두리 안에 머물던 각종 기능 중 일부를 외부에 맡기고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가맹본점과 가맹점’ ‘대리본점과 대리점’ 등 다양한 고용 관계가 사회 전반에 확산됐다.

특히 ‘IT 기술의 혁신’은 이런 고용 방식을 더욱 다양하게 쪼갰다. 요즘엔 많은 일이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쉽게 배분된다. 최근 각광받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는 이런 추세를 타고 탄생했다. 이들은 온라인ㆍ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 일감을 던져주는 고객과 이를 필요로 하는 노동자를 그때그때 연결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카카오택시, 우버, 배달의 민족, 쏘카, 에어비앤비 등의 기업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런 고용방식을 일컫는 단어가 있다. 바로 긱 이코노미(Gig economy)다. 긱은 원래 문화ㆍ예술계에서 쓰는 용어다. 공연장 주변에서 연주자를 구해 단기간 공연계약을 맺는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이 경제를 만났다. 누군가에게 고정적으로 고용돼 있지 않고 필요할 때 일시적으로 고용돼 돈을 번다는 거다.

긱 이코노미의 활성화는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높은 실업률을 낮출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미 운전사와 승객을 연결해주는 우버에는 전세계적으로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일을 하고 있다. 필요에 따라 일하고 능력대로 분배받는 이상적인 경제 시스템도 매력이다. 이게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단기 공연하는 것처럼 일을 …

기업 입장에서는 직접 고용 부담을 덜 수 있다.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게 되는 거다. 업무 규모에 따라 노동 규모도 손쉽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긱 노동자는 일정을 고용주와 따로 상의해서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내가 지금 일을 할 수 있다고 설정을 하면 끝이다. 능력만 있다면 벌 만큼 번 뒤 ‘저녁이 있는 삶’을 얻을 수도 있다. 긱 이코노미가 앞으로 노동시장을 바꿀 핵심 요소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한국형 긱 이코노미는 흥행할 공산이 더욱 크다. 우리나라 정부 역시 ‘일자리 만들기’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핵심은 노동유연성 확보다. 내용은 ‘임금피크제 도입, 업무부적격자에 대한 해고요건 완화, 통상임금 기준 정비, 근로시간 유연성 확대, 실업급여 확대’ 등으로 긱 이코노미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긱 이코노미의 미래가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의 말을 들어보자. “긱 이코노미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건 기업뿐이다. 이 시스템에서 기업들은 노동력이 필요할 때마다 따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 중 한명에게 ‘공유 경제’라는 달콤한 말로 설득하고 값싸게 부리면 된다. 긱 이코노미는 언뜻 흥미로운 경제와 자유로운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노동시장의 보호와 미래의 좋은 직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

단언컨대 기업은 긱 이코노미를 활용하면 고용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털어버릴 수 있다. 동시에 고용주의 법적 책임까지 팽개칠 수 있는 ‘덤’을 얻는다. 긱 이코노미에 참여한 노동자의 지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근로 계약서를 들이밀면 근로자성을 인정받고, 도급 계약을 체결하면 개인 사업자로 전락한다.

유연성 뒤에 숨은 ‘사각지대’

박정훈 알바노조 위원장은 “하물며 근로계약서 작성이 법으로 정해진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도 인건비를 줄이겠다며 근로 계약을 외면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규제가 없는 분야라면 어떤 사업주도 근로 계약서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긱 노동자들의 입지는 갈수록 불안해질 것이다. 언젠가는 가장 큰 장점이라는 ‘자유로운 업무활동’도 제약을 받을 게 분명하다. IT 기술을 이용하면 언제든 원격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GPS로 위치가 공유되고, 프로그램으로 작업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제공된 서비스의 질에 대해서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제조업 사내하청보다 더욱 긴밀하게 현장 노동자들을 관리, 통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김 연구원은 “긱 이코노미 같은 단어는 현상을 미화하고, 원래의 함축을 가린다”면서 “긱 이코노미의 실상은 ‘비정규직 경제’, 더 나아가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도 없는 경제’”라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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