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 이코노미에 숨은 허점

10대 학생의 스마트폰이 ‘띵동’ 울린다. 배달대행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이 학생은 배달대행 업체에 소속된 배달 노동자다. 음식점에서 배달 요청이 오면 ‘콜’을 눌러 배달을 한다. 스마트폰을 쓴다는 것을 제외하면 중국집 배달 원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 법원은 이 학생을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고 판단했다. 어찌 된 영문일까.

▲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고등학생이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럼에도 산업재해 보험 혜택을 못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2013년 10월. 고등학생 공모군은 일시적 고용 형태로 돈을 버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노동자가 됐다. O2O 배달대행 업체의 배달원이었다. 공군이 이 업체에서 일하기로 한 이유는 간단하다. 아르바이트치곤 벌이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공군은 배달 1건당 2500~4500원의 수수료를 사업주로부터 받았다. 한달간 꾸준히 배달하면 100여만원은 넉넉히 손에 쥘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공군에게 사고가 닥쳤다. 그해 11월,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와 충돌해 척추가 부러졌다.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콜’을 받고 배달을 가던 중이었다. 사고 이후 배달대행업체에 소속된 근로자라는 사실을 인정받은 공군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진료비 약 2500만원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틀어졌다. 피해액의 50%를 부담하라는 통보를 받은 배달대행 업체의 사업주가 “공군이 회사 소속 근로자가 아니어서 피해액을 부담할 책임이 없다”면서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쟁점은 공군이 사업주에게 고용된 노동자였느냐였다.

1심 결과는 배달대행 업체의 승리였다. 지난해 9월 1심 법원은 공군을 배달대행 업체의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판단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이 판결의 최종 결정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커다란 질문을 던질 것”이라면서 “기술이 발전함과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근로계약이 쏟아지고 있는데, 관련법이 이들을 얼마나 보호할 수 있을지의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1심의 판단은 우리나라 긱 이코노미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법원이 공군을 개인사업자로 판단한 근거는 대략 네가지다. 첫째 근거는 공군의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사업주로부터 지휘ㆍ감독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급여 조건은 법원이 사업주의 손을 들어준 둘째 근거다. 공군이 고정급이나 상여급이 아닌 건당 수수료만 받았기 때문이다.

셋째 근거는 ‘자율성’. 법원은 “공군이 음식점 배달 요청을 골라서 수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로자의 지위와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다. 넷째 근거로 법원은 수익구조를 들었다. 이윤과 손실의 부담이 오롯이 공군에게 있기 때문에 개인사업자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법원은 근로계약서 미작성, 4대보험 미가입, 근로소득세 미납부 등을 공군을 개인사업자로 판단한 근거로 삼았다.

“배달대행 배달원은 개인사업자”

법원의 결정은 언뜻 합리적인 것 같다. 배달대행 업체의 표면적인 역할은 음식점과 배달원을 이어주는 플랫폼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공군의 업무는 배달이 가능한 시간에 국한됐다. 배달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사무실에서 대기했다. 공군이 지각을 했을 때 사업주가 혼을 내기도 했다.

윤 변호사는 “배달원의 건당 수수료도 사업주가 결정했다”면서 “하물며 공군이 들고 다니던 배달통에는 배달대행업체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도 공군을 무작정 개인사업자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윤지영 변호사는 “근무 방식, 대가의 지급 방식, 근무 장소 등은 근로자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면서 “사업주와 공군이 같은 조건에서 근로계약서만 작성했더라면 공군은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르면 근로자란 ‘직업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공군 사건이 시사하는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1심의 판결대로 공군이 개인사업자라면, 세차ㆍ주차ㆍ빨래ㆍ청소ㆍ애완견 돌보기ㆍ대리운전 등을 대행하는 O2O 관련 노동자도 개인사업자일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이들은 근로기준법은 물론 임금체불, 일방적인 계약종료 등에도 저항할 수 없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IT기술의 발전으로 사용자는 언제든지 노동법의 책임을 탈피할 수 있는 시대”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근로자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이들을 불공정한 사업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사법부가 공감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