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❹

▲ 모피 사냥꾼에게 사냥감은 집과 명예가 되기도 하고 지위가 되기도 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레버넌트’의 시대적 배경은 1875년께 제국주의 태동기다. 제국주의는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 요체는 ‘시장경제’의 전 세계적인 확산이며, 생산을 위한 자원 확보, 생산된 상품을 독점하기 위한 서구열강의 경쟁이다.

‘레버넌트’의 서사 중심에는 미주리강의 설치동물 ‘비버’가 자리 잡고 있다. 주인공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일행이 백인은 눈에 띄는 대로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머리 가죽을 벗겨버리는 인디언들의 땅인 미주리강 유역의 숲으로 뛰어드는 것도 비버 사냥과 가죽 채취 때문이다.

인간들이 만든 ‘시장’은 신神이 창조한 자연의 질서쯤은 단숨에 파괴할 만큼 위력적이다. 신의 의지로 창조됐을 자연의 모든 것은 신이 정해준 제자리를 떠나 ‘인간의 시장’에 등장한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 그 종種은 멸종하거나 최소한 희귀종이 된다.

‘시장’은 인간 자신들의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 우주관까지 한순간에 바꿔버리기도 한다. 신을 경외하고 자신들을 자연의 일부라고 믿는, 그래서 꼭 필요한 만큼만 수렵하고 채취하는 인디언들도 비버 모피 사냥에 눈이 뒤집힐 정도다. 이렇듯 나에게 불필요한 것도 남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나에게도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장치가 ‘시장’이다.

인디언들은 비버 모피 가죽을 백인들의 술, 총과 교환한다. 인디언들에게 불필요했던 비버가 시장에 나가면 인디언들에게 소중한 술과 총으로 돌아온다. 비버는 더 이상 단순한 비버가 아니다. 술이며 총이 되는 거다. 모든 물물物物이 고유의 가치를 잃고 온갖 것으로 둔갑시키는 것이 바로 시장의 마법이다. 휴 글래스와 피츠 제랄드(톰 하디)에게도 비버는 집이 되기도 하고 명예가 되기도 하고 지위가 되기도 한다. 목숨을 걸 만하다.

▲ 살아남은 이들은 부상한 동료 대신 모피를 갖고 도주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휴 글래스 일행은 천신만고 끝에 모은 비버 모피 꾸러미를 메고 돌아가던 중 인디언들의 습격을 받는다. 30여명이었던 휴 글래스 일행은 처절한 육탄전 속에 겨우 9명만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이들은 부상한 동료는 버리지만 비버 모피만은 신주단지처럼 껴안고 배를 타고 도주한다. 휴 글래스 일행이나 인디언 모두 일용할 필수품도 아닌 비버 가죽이 자신들의 목숨보다 소중했던 거다. 이처럼 ‘시장’이라는 블랙홀에 모두가 빨려 들어간 참상이 영화의 도입부를 장식한다.

시장은 모든 것들을 오로지 교환가치로 평가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보다는 남들에게 필요한 것이 나에게도 가치 있는 것이 되는 식이다. 시장에 물건을 내놓기 위해서는 나의 ‘주관적 가치’는 무의미하다. 오로지 더욱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객관적 가치’에 충실하고 맞춰줘야 한다. 자신이 법학에 소질이나 취미가 없어도 ‘시장’이 원하고 높은 가격을 매겨준다면 무조건 해야 한다. 시장이 영어를 원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해야 한다.

‘시장’은 ‘신’을 대신한다. 시장의 요구와 기호에 맞춰 상품의 견적見積에나 쓸 수 있는 ‘스펙’이라는 개념이 감히 인간에게까지 서슴없이 적용된다. 모든 대학생들이 자신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시장이 원하는 ‘사양’을 한가지라도 더 갖추기 위해 여념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시장이 원하는 ‘빵빵한 스펙’을 갖춘 인간을 우리는 ‘인재人材’라고 부른다. 학교는 ‘인재를 양성한다’고 하고, 회사는 ‘인재를 영입하고, 관리한다’고 한다. 시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도 더 이상 인간 자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인간도 시장이 원하는 인간이어야 비로소 인간이다. ‘시장’이 원하는 ‘난데없는’ 비버를 찾아 나섰던 휴 글래스가 겪은 형극荊棘의 고통과 비극이 오늘 대한민국 도처에서 반복된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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