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기업엔 법조인이 필요하고, 법조인에겐 기업이 필요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청난 소송 금액이다. 기업은 소송을 이기려면 법조인에게 돈을 풀어야 한다. 법조인은 돈을 벌거나 권력을 가지려면 기업의 자금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악어와 악어새 관계 때문에 ‘비리의 고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이 고리를 끊어야 할 의무가 있다.

▲ 기업과 법조계 사이엔 ‘비리의 고리’가 형성돼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법조계 전체가 아수라장이다. 고위 검찰직을 지낸 변호사가 도박을 벌인 기업가의 뒤를 봐주기 위해 상상하기 힘든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른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민생고에 허덕이는 국민들은 분노와 배신에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권옹호와 사회정의의 수호자로 불리는 법조인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은 더욱 따갑다. ‘법조인은 기근을 면할 정도면 족하고, 부자가 돼선 곤란하다’는 격언 때문이다.

사실 기업가와 법조인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다. 헛갈릴까봐 구체적으로 쓰면 기업가는 악어요, 악어새는 법조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법조계에 기업은 무시 못할 고객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어마어마한 소송금액을 선뜻 낼 수 있는 기업이 ‘대박고객’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 때문인지 기업 송사訟事를 잘 처리하는 법무법인은 돈이든 권력이든 실력이든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다.

반면 기업에 법조계는 ‘수호신’이다. 기업의 생명과 경쟁력을 쥐락펴락하는 소송에서 승리하려면 최고의 변호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유능한 판검사 출신들을 기업 법무팀에 스카우트하기 바쁜 것이다. 이를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재벌그룹의 법무팀을 누가 이끄는지 알면 답이 금세 나오기 때문이다.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가 다닌 대우그룹도 그룹 전체에서 쏟아지는 송사 물량이 어마어마했고, 당연히 그 금액 역시 천문학적이었다. 그래서 대우그룹 송사를 둘러싸고 알려지지 않은 비화秘話도 많다.

첫째 비화를 보자. 어느날, 대우그룹 최고 임원은 검찰 기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당시 검찰 수장은 고문변호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협상안을 제시했다. “검찰 수장의 남동생이 운영하는 A기업을 대우가 인수해 살려주면 기소유예로 선처하겠다.”

필자는 남동생을 만나 해당 기업의 경영실태를 파악해 봤다. 하지만 기업을 정상화하려면 200여억원의 자금이 필요했고, 생존도 불투명했다. 대우그룹 측은 그 제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해당 임원은 기소가 돼 징역형을 살았다. 어찌 됐든 법조계와 기업의 뒷거래를 엿볼 수 있는 사례다.

둘째 사례는 대우그룹이 붕괴된 1999년도의 일이다. 자금이 말라버린 대우그룹은 당시 정부의 지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의 지원 방안은 크게 두가지였다. 은행 채무를 동결유예하고 출자전환해 채권단에 경영권을 넘겨주는 방안(워크아웃), 모든 일반부채를 동결유예하고 법원에 경영권을 넘겨주는 방안(법정관리)이었다.

구조조정본부를 이끌던 필자는 법정관리를 선호했다. 워크아웃은 경영권이 사실상 정부에 있어, 정부와 불협화음을 내던 대우그룹엔 불리한 방편이었다. 반면에 법정관리는 정부와는 분리된 법원이 경영권을 갖고, 관리인을 내세우기 때문에 대우그룹에 유리했다. 더욱이 법정관리는 모든 부채가 동결돼 정상화 작업이 훨씬 수월했다.

필자는 법정관리행을 확정하고 한국의 최고 법무법인에 그 절차를 의뢰했다. 이는 한국경제의 회생을 위해서도 ‘중요한 의뢰’였다. 하지만 그 법무법인은 과도한 선착수금을 요구했다. 부도처리된 대우그룹으로선 엄청난 자금이 있을 리 없었고, 후불조건을 제시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사이, 정부는 일방적으로 ‘워크아웃’을 통보했고, 모든 경영이 정부의 손아귀로 넘어가버렸다.

이처럼 악어와 악어새는 힘이 있을 땐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힘을 잃으면 악어는 평범한 동물로 전락하고, 악어새는 떠난다. 그 과정에서 남은 건 엄청난 돈과 비리뿐이다. 기업과 법조계, 이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하루빨리 끊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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