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방화범 화법에서 배울 점

▲ 트럼프의 막말에 대중들은 왜 열광할까. 그 이유를 읽어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사진=뉴시스]
일시적인 미풍이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노련하다. 트럼프의 힘은 ‘무지막지한’ 언어에서 나온다. 파리 테러 후 트럼프의 화법은 논리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그저 때려 부수겠다는 거다. 트럼프는 “나 같으면 그 얼간이들을 폭격해버리겠다” “유전 파이프를 다 날려버리겠다”고 했다. 두 문장이 각각 영어로 여섯 단어, 다섯 단어다. 그저 “날려버리겠다” “하나도 안 남기겠다”는 기초 영어에 ‘얼간이들’이라는 비속어를 섞어 시원하게 내질렀다.

여론조사를 보면 논리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오바마 대통령의 ‘변호사 화법’은 사방에서 얻어맞고 있고, 선동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의 ‘방화범 화법’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미국 카네기맬런대 언어기술연구소는 트럼프의 문법은 초등학교 5~6학년, 어휘는 중학교 1~2학년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가 사실상 미국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의 ‘화법’을 분석했다. 첫째, 분열적 용어의 반복적 사용이다. 트럼프는 끊임없이 ‘우리’와 ‘그들’을 나눈다. ‘우리’는 선하고, ‘그들’은 나쁘다는 식이다. 둘째, 불안감 조성이다. 다른 후보들이 애국심에 호소할 때 그는 대중의 불안감을 자극한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변화, 경제적인 비관, 소수의 부상에 대해 대중이 느끼는 불안감을 예리하게 건드린다.

셋째, 정치적 라이벌이나 반대자들에 대해선 ‘어리석다’고 몰아붙인다. 트럼프는 끊임없이 “그들 모두는 허약하다. 정말 약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자신만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최면을 거는 식이다. 물론 광속 질주하는 트럼프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언어가 휘두르는 ‘어두운 힘’을 보는 듯해 심사가 편치 않다. 하지만 트럼프의 막말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심리를 읽어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이다.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랫동안 한국인의 사랑을 받은 것은 간결한 언어가 던져주는 말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을 말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며 목청을 돋우었다. 어둠의 시대에서도 국민은 이들의 한마디에 큰 위로를 받았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도전정신을 일깨웠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장단과 그룹 주요 임원을 모아놓고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압축되는 신경영 선언으로 삼성그룹의 대변혁을 이끌었다. 한국은 지난 60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위기를 맞고 있다.

늙어버린 한국경제는 구조개혁을 해나갈 힘도, 해외시장으로 박차고 나설 추진동력도 잃은 채 헛바퀴를 돌리고 있다.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 이 나라 지도자들의 ‘언어능력’ 아닐까. 적절한 시기에 국민의 심장을 ‘쾅’하고 울리게 하는 진정성 담은 언어를 던져야 하는데, 입만 열면 책임회피이고, 유체이탈 화법이다. 대통령과 집권당 지도자들은 4ㆍ13 총선에서 참패를 해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야당 지도자들도 소통능력에서는 오십보백보다. 문재인 전 더민주당 대표는 20대 여성의 강남역 묻지마 살해 현장에 가서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라”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9세 남성이 사망한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건에 대해 “가정형편이 어려워 그런 일을 하다가 화를 당했다”는 식으로 언급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흘이 지나서야 “청년들이 내몰리는 현실에 기성세대 책임을 통감한다”고 마치 남의 얘기하듯 했다.

GE의 최고경영자였던 잭 웰치는 핵심적인 언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열번 말하기 전에는 한번도 말한 것이 아니다”면서 “중요한 일은 단순화해 반복해서 말하라”고 갈파했다. 잭 웰치는 심지어 기업의 핵심가치는 700번 이상 반복해서 직원들에게 말해야 겨우 알아들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민들은 가뜩이나 먹고살기 고달프다. 말을 마치 축구공처럼 빙빙 돌려가면서 얘기하는 것을 피곤해 한다. 단독직입적으로 말하라. 반복해서 말하라. 아니면 아예 말을 꺼내지 말라.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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