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명량❶

▲ 1700만명 관객몰이를 한 이순신 장군의 ‘영웅담’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닮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흥행기록이 경마 경주는 아니지만 김한민 감독의 2014년 작품 ‘명량’은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1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모든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지만 이 기록을 깬다는 것은 어쩐지 상식의 저항마저 불러일으킨다.

세계적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제도는 영원히 나올 수 없다는 의미에서 현재를 ‘역사의 종말’이라고 표현했다면, 영화 ‘명량’의 기록은 ‘흥행의 종말’쯤으로 불러도 좋을 듯하다.

‘대박’의 요인들은 분명 있지만 모든 성공의 원인분석은 결과론적이다. 진정한 성공의 원인분석이 가능하다면 ‘쪽박’ 찰 사업이나 영화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수많은 사업과 공연, 영화들이 ‘쪽박’을 차고 끝난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한민국 인구 5000만명 중 2000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만만치 않은 시간과 돈을 기꺼이 투자하는 ‘이상현상’을 만들었을까.

이순신 장군의 ‘영웅담’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닮았다. 2002년 월드컵 폴란드전, 포르투갈전, 이탈리아전, 스페인전의 골 장면을 아무리 돌려봐도 지겹지 않다. 1592년 한산도대첩이나 1597년 명량해전, 1598년 최후의 노량해전 등 기적 같은 승리의 기록들 역시 드라마, 연극, 영화로 무한반복해도 볼 때마다 가슴이 뛰고 속이 후련하다. 특히 임진왜란 최후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장렬한 전사는 2002년 월드컵 4강이었던 독일전에서의 장렬한 패배와 같다. 이순신 장군은 전사했지만 마치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처럼 ‘모두 이루었다(tetelestai)’다.

불가사의한 규모의 관객들은 영화 ‘명량’에서 무엇을 보기를 원했고 또 무엇을 봤을까. 꽃을 찾으러 숲 속에 들어가면 나무는 보이지 않고, 약초를 찾으러 들어가면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영웅 이순신’의 신화 같은 승리에만 집중하면 임진왜란의 숱한 ‘배경’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월드컵 4강 신화 승리의 기록들을 무한반복해서 즐기는 것은 무해無害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거둔 몇몇 승리의 기록만을 반복재생하면서 승리감에 도취돼 민족사적인 참극과 수모의 ‘배경’을 잊는다면 이것은 유해有害할 수밖에 없다.

▲ 이순신 장군의 승리에 도취돼 참극의 ‘배경’까지 잊어선 안 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우리 현대사 최대ㆍ최악의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한국전쟁에서 약 14만명의 남한군이 전사하고 민간인 약 37만명이 희생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임진왜란과 비교한다면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 그 희생자 규모가 당시 남한 인구의 4% 정도에 불과(?)해서다. 까마득한 과거도 아닌 불과 400여년 전 실재했던 임진왜란의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각종 사료에 따르면 임진왜란 직전까지 약 1100만명이던 조선 인구는 전란 이후 약 800만 명으로 줄었다. 당시 인구의 약 30%에 해당하는 300만명이 7년간의 전란에 사라진 거다. 특히 군역軍役을 지고 징집대상이었던 장정층은 궤멸潰滅적인 타격을 입는다. 전체 장졸의 72%가 전사했으니 조선을 지탱해야 할 기둥 자체가 사라진 셈이다. 정확히 수치로 따지면 7년간의 임진왜란에 징발徵發된 조선 장졸 9만7600명 중에서 7만명이 전사자로 기록된다. 현재 5000만 인구와 60만 병력에 대입해보면 약 1500만명의 민간인 사망과 45만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것이다.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은 참상이다.

명량해전을 포함한 이순신 장군의 승전의 기록들은 분명 월드컵 4강 신화처럼 가슴 후련하고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임진왜란의 배경과 참상과 모욕까지 덮거나 모른 척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영화 ‘명량’을 2002년 월드컵 골 장면 모음 재방송처럼 즐겨서는 안 될 이유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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