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점 많은 6ㆍ8 플랜

▲ 정부의 6ㆍ8 구조조정 추진 계획은 대우조선과 현대ㆍ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Big3)'가 마련한 자구안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사진=뉴시스]
정부가 8일 발표한 부실기업 구조조정 추진 계획은 한마디로 맹탕이다. 국민에게 12조원의 막대한 비용 부담을 안기면서 산업구조 개편의 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한국판 양적완화 운운하며 바람을 잡더니만 끝내 국회 통제를 받지 않는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꼼수를 선택했다.

문제의 조선ㆍ해운업 부실이 깊어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따지면 8년, 4ㆍ13 총선 직후 야당이 이례적으로 구조조정에 동의하고 나선 이후로 보면 두달만에 나온 정부 정책치곤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구조조정 추진 방안은 시장은 물론 국민의 큰 관심사였다. 조선ㆍ해운ㆍ건설ㆍ철강ㆍ석유화학 등 한국경제를 떠받쳐온 주력 업종의 운명이 달려 있는 데다 수많은 협력업체 및 근로자의 생계,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마땅히 관련 경제부처들이 역량을 최대한 모으고 청와대 및 여당과도 충분히 협의해 치밀하고 종합적인 정책을 내놓을 줄 알았다. 그러나 6ㆍ8 구조조정 추진 계획에는 정부의 고뇌도, 책임도, 비장함도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오랜 저성장 국면에 빠져 있다. 원ㆍ부자재와 완제품 물동량이 감소하면서 조선ㆍ해운업 경기에 직격탄을 날렸다. 철강ㆍ석유화학 제품의 수요도 줄었는데 주요국의 생산설비는 과잉이라서 제품 가격이 하락하며 채산성이 악화됐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수출ㆍ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중국이 내수ㆍ서비스업 중심으로 경제체질을 바꾸는 한편 선진국들은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4차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선ㆍ해운업 등에 대한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았어도 산업구조 개편을 고심해야 할 엄중한 시기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너무 한가하다. 특정 기업의 부실 처리를 뛰어넘어 관련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구조조정, 신성장동력까지 망라한 국가경제 개조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할 텐데 6ㆍ8 구조조정 추진 계획은 대우조선과 현대ㆍ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가 마련한 자구안을 나열하는데 그쳤다.

선제적인 사업 재편이나 조정 없이 빅3가 제출한 인력과 설비 감축 위주의 자구안을 수용하고 거기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거대기업이 부도 위기에 몰리면 회생 가능성을 면밀히 따지지 않고 구제금융을 퍼부어온 그동안의 방식과 별 차이가 없다. 조선업 불황이 2018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버티겠다는 심산인데, 그 이후에도 업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본격적인 구조조정 부담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런 면에서 6ㆍ8 구조조정 계획은 조선 3사와 한진해운, 현대상선의 양대 국적선사를 모두 끌어안아 다음 정권에 넘기겠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구조조정 과정에 들어갈 12조원의 비용 마련 방안도 문제다. 부실기업 여신이 많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두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한다면서 정공법인 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대신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기로 했다. 한국은행더러 10조원을 만들도록 하고, 정부와 기업은행은 각각 1조원씩 출자와 대출 방식으로 내놓는다. 재정을 투입하려면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국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세금투입 논란과 정부책임론이 불거질 것을 염려했으리라. 여소야대인 국회의 동의와 협조를 얻어도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 작업이 순탄치 않을 텐데 어떻게든 국회를 피하려 드니 안타깝다.

구조조정 사령탑이 없다는 비판을 의식했는지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산업 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가 신설됐다. 유일호 부총리는 8일 첫 회의에서 “산업구조 개혁은 개별 기업 차원의 구조조정을 넘어 산업 차원의 구조 개편과 미래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연 6ㆍ8 구조조정 추진 계획이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가. 본격 실행에 들어가기 전에 구조조정 추진 계획부터 더 구조조정하라.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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