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이야기「복지의 배신」

복지 혜택도 양극화, 복지 실타래는 언제부터 꼬였나

복지는 권리인가? 시혜인가? 복지정책 얘기가 나올 때마다 대립하는 논제다. 정당별 복지의 개념도 다르다. 이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 건 복지 키워드가 ‘표심 잡기’에 유리하다는 점뿐이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이러이러한 조건에 맞는 어떤 계층의 누구에게 얼마를 지원하겠다’는 식의 공약이 판을 친다. 정책의 내용은 대개 ‘돈’으로 채워졌을 뿐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대선과 총선 때도 이런 현상은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은 왜 항상 ‘돈’ 문제와 맞물려 이슈가 되는 걸까. 송제숙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교수는 이런 경향을 ‘한국형 복지’이자 ‘신자유주의적 복지’로 분석한다. 그러면서 그의 저서 「복지의 배신」에서 이 한국형 복지가 언제 어떻게 태동했는지, 파생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형 복지는 1997년 외환위기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이라는 유의미한 정치·경제적 사건의 틈바구니에서 문을 열었다. 이 시기는 국가가 빈곤층을 지원함으로써 사회 불안정·불평등을 규제하려는 노력이 광범위하게 드러나던 때다. 그래서 이때의 정책을 분석하면 한국 복지 정책의 특성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저자가 IMF 시대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 교수는 국내 ‘생산적 복지’ 개념도 IMF 시대 때 싹튼 것으로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 미디어는 회사 구조조정이나 파산으로 갈 곳 잃은 남성들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현상을 집중 조명했다. 그러자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을 구제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던 정부는 노숙자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국가가 복지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시민과 ‘자격이 없는’ 시민으로 나눠 차별한 것으로 본다. 노숙자 지원 과정에서도 차별이 진행됐다는 얘기다.

송 교수는 IMF가 터지기 전부터 서울역에 살고 있던 노숙인은 당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사실을 지적한다. 정부는 직업이 있다가 노숙자로 전락한 ‘가장家長’만을 도우려 했다. 이들에게 재활 능력과 재취업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국가가 경제·사회적 지원을 받은 이후 다시 시장에 나와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국민에게만 복지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는 거다.

남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여성 노숙자 역시 지원받을 자격을 박탈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이런 경향이 IMF 이후 수립된 대다수의 복지 정책에 깊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무상급식, 노인수당, 누리과정 예산 집행 등 현재 시행 중인 복지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논란은 외환위기 시기, 바로 그때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송 교수는 생산적 복지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국민들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게 됐다고 비판한다.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도 ‘자기계발’의 증거를 내보여야 하는 데 취직준비나 직장생활을 할 땐 오죽하겠느냐는 거다. 자기계발 서적 열풍도 맥을 함께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적 복지체계는 신자유주의 기준에 합당한 인물들을 길러내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복지 본래의 의미가 퇴색한 거다. 이 책의 제목이 「복지의 배신」인 이유다. 이 책은 저자가 IMF 외환위기 당시 해외 유학파 전문가로서 대통령 직속, 서울시 직속으로 설치된 몇몇 대책위원회에 참여했던 경험을 토대로 정리됐다. 그 어느 때보다도 복지 논쟁이 치열한 지금, 송제숙 교수의 묵직한 메시지를 참고해 보는 건 어떨까. 

세가지 스토리


「퓰리처」
제임스 맥그래스 모리스 지음 | 시공사 펴냄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문학·음악상인 ‘퓰리처’상은 조지프 퓰리처의 유지에 따라 창설됐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그는 언론의 황금기를 열었지만 동시에 언론 제국에 군림했던 언론인이자 사업가였다. 청년기에는 모든 언론인의 귀감이 된 ‘진짜’ 저널리스트였지만 말년에는 부패한 사업가로 전락하고 말았던 그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맨발의 엔지니어들」
구루 마드하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아이작 뉴턴이 우주의 물리법칙을 발견했지만 태양계 바깥으로 탐사선을 쏘아 올린 건 엔지니어들이다. DNA 구조를 규명한 것도 분자생물학자지만 줄기세포 응용 기술의 업적은 공학자들 몫이었다. 과학이 ‘발견’을 했다면 공학은 ‘창조’를 했다. 저자는 공학의 많은 도구들이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켜왔다면서 엔지니어들이 뛰어넘은 여러 가지 역사적인 도전들을 소개한다.

「왜 사람들은 내 말을 오해하는 걸까?」
야마구치 아키오 지음 | 알키 펴냄

상대방을 위한다고 부드러운 표현을 골라 말했는데 오히려 화를 내서 당황스러웠던 경험 한번쯤 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저 인간은 꼬여 있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화법 때문이라면? 20년 동안 일본 정부 고위관료와 정재계 대표,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지도해온 저자가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알려준다.
김미란·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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