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수사의 또 다른 의문

롯데를 두고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그룹의 ‘존폐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롯데의 비리 문제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반反롯데 정서가 일 만큼 롯데의 경영을 문제 삼는 일이 많았다. 검찰은 왜 이제야 칼자루를 들었을까. 지금껏 신辛의 왕국을 비호한 세력은 누구일까.

▲ 재계 서열 5위 기업인 롯데그룹이 검찰의 전방위적인 수사에 흔들리고 있다.[사진=뉴시스]

롯데그룹이 검찰 수사에 흔들리고 있다. 검찰은 지난 10일 수사인력 200여명을 롯데그룹에 급파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 7곳은 물론 신격호 총괄회장의 숙소 겸 집무실인 롯데호텔 34층, 신동빈 회장의 자택을 샅샅이 뒤졌다. 검찰은 그로부터 4일 후인 14일에도 계열사 10여곳과 임원 주거지 등을 포함한 2차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차량 17대 분량의 서류와 컴퓨터와 직원 휴대전화까지 모조리 압수됐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비리 의혹이 쏟아졌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 전 비서실장의 처제 집과 롯데호텔 비서실 내 비밀공간에서 신 총괄회장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현금 30억여원, 통장과 금전출납부 등을 발견했다. 신 총괄회장의 부동산 거래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신 총괄회장의 개인 땅을 계열사에 팔면서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거다. 신 총괄회장의 오산 땅, 인천 계양구 계양산 골프장 부지 등이 논란에 휘말렸다.

롯데건설ㆍ롯데칠성음료 등 계열사 10여곳은 부당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8년 롯데 제주리조트의 지분을 보유했던 회사들이다. 검찰은 이들 계열사가 제주리조트 건설 부지 땅과 제주리조트 지분을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하는 방법으로 호텔롯데에 부당한 이익을 안겨줬다고 보고 있다.

그룹 계열사 중 규모가 가장 큰 롯데케미칼은 ‘해외 비자금 창구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롯데케미칼이 원료를 수입할 때 거래대금을 부풀리고 과다 지급된 거래대금 일부를 일본 계열사를 통해 빼내거나 쌓아두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마련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검찰은 호텔롯데의 지분 중 99%를 일본 계열사가 소유한 만큼 국부유출도 의심하고 있다. 이외에도 내부거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롯데그룹에서 일감 몰아주기, 매출 부풀리기를 통해 비자금이 조성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살펴보고 있다.

연 매출 83조원에 93개 계열사를 보유한 국내 재계 5위 롯데그룹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새로운 비리 행위가 실시간 보도될 정도다. 일부 언론은 롯데그룹의 심장이라는 전략기획실에 대한 첫 검찰 수사라고 분석하고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사실 롯데의 병폐와 낡은 시스템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불투명한 지배구조에 있다. 지난 2월 기준 신 총괄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2.4%밖에 되지 않는다.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수사

그럼에도 총수 일가는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그룹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4년 4월 기준 롯데그룹 계열사 간 순환출자 고리는 무려 9만5033개. 지난해 지배구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지자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말 기준 순환출자의 고리를 67개로 줄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집단의 전체 순환출자(94개) 중 71.3%가 여전히 롯데의 몫이다.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핵심 계열사들이 비상장사라는 점도 문제다. 86개에 이르는 국내 롯데 계열사 중 상장사는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푸드,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롯데하이마트, 현대정보기술, 롯데손해보험 등 8곳뿐이다.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 구실을 하는 호텔롯데를 비롯해 부산롯데호텔, 롯데알미늄, 롯데물산 등 일본 계열사의 출자 비중이 높은 계열사는 비상장사다.

물론 검찰 수사로 좌절되긴 했지만 호텔롯데는 기업공개를 추진하지 않았느냐는 항변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호텔롯데가 상장됐더라도 대주주인 일본 내 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12곳은 비상장사다. 이들은 지난해 8월 기준 호텔롯데 지분을 각각 19.07%, 72.65% 소유하고 있다. 롯데홀딩스를 27.65%

소유한 사실상의 최상위 지배기업인 일본 광윤사도 비상장사다. 애초부터 외부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거다.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화근禍根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털지 않아도 먼지가 날 것 같은 롯데가 지금껏 단죄斷罪를 받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동주 재벌복합쇼핑몰비대위 정책위원장은 “롯데의 비상식적인 경영 활동은 그간 많은 시민단체와 언론을 통해 고발됐다”며 “하지만 사정기관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유야무야 끝나곤 했다”고 말했다. 언제든 롯데를 단죄할 수 있었음에도 검찰 스스로 방관하기 일쑤였다는 거다.

롯데그룹의 깜깜이 지배구조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언론에서 ‘단독’을 붙여가며 자랑스럽게 보도하는 사건은 사실 이미 과거에 한번씩은 제기됐던 문제들”이라며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는 건 마땅하지만 그 시기가 왜 지금인지는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단 몇번의 압수수색으로 검찰은 롯데의 비리 관련 자료를 습득한 것 같다”면서도 “그렇다면 롯데 관련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이유도 검찰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어찌 됐든 칼자루는 검찰이 쥐었고, 공격은 시작됐다. 롯데의 만연한 비리는 뿌리 뽑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검찰이 뒤늦게 롯데를 인정사정없이 내리치는 이유도 살펴봐야 한다. 압수수색으로 쏟아진 롯데의 숱한 비리도, 그렇게 비리가 많은 기업을 지금껏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이유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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