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명량❷

▲ 이순신 장군은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결기로 왜군에 맞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국의 루이스 리처드슨(1881~1953년)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수학자였던 그는 수학적 원리를 기상 예측과 전쟁의 원인분석에 도입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수학자이자 기상학자인 동시에 전쟁학자였다. 리처드슨은 전쟁이라는 참극은 사실상 ‘오산誤算’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전쟁 당사자들이 피아彼我의 국력과 전력을 정확히 계산하고 전쟁의 전개를 기상예측처럼 정확히 예측했더라면 대부분의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16세기 후반 동아시아 정세를 뒤흔든 임진왜란도 리처드슨의 개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명나라를 정벌하러 가는 길을 비켜달라’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에 조선 인구 3분의 1이 졸지에 사라진다. 히데요시의 본심은 알 길이 없지만 조선과 일본이 동맹해 명나라를 정벌하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길을 비켜주지 않은 대가는 실로 가혹하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극단적으로 긍정적인 사고로 무장하고 선조에게 그 유명한 장계狀啓를 올린다. “今臣戰船尙有十二 臣若不死 則賊不敢侮我矣(지금 신에게는 전선이 아직 12척 남아 있습니다. 신이 만약 죽지 않는다면 적은 감히 우리를 모욕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선 300척을 맞아 ‘달랑’ 12척의 전선으로 전투에 나서며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결기로 왜군을 막아낸 결과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당시 1100만 조선인구가 800만으로 줄고 전군의 72%가 전사하는 참극으로 이어졌으니 ‘사즉생死卽生’이 아니라 ‘사즉사死卽死’였던 셈이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5년께부터 중국대륙 침략의 야망을 드러내고 병력 정비와 총포 생산에 전력을 기울였다. 조선 침공과 대륙 정벌의 최전선에 해당하는 대마도 영주가 히데요시의 계획을 조선에 알리고 전란을 피하려는 나름의 노력도 했다. 하지만 조선은 왜놈들의 무례함에 분기탱천할 뿐 현실을 직시한 냉철한 ‘계산’에는 소홀했다. 당시 일본은 국력과 전력을 갖춰 ‘전투 머신(machine)’이 된 병사들이 넘쳐났다. 인구는 2200만명에 달했고, 대한해협을 건너 조선에 투입된 병력만 해도 34만명에 육박했다. 반면 ‘박박 긁어모은’ 조선군은 9만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한평생 전쟁이라고는 경험해보지 못한 ‘농투성이’들뿐이었다. 명나라가 나라의 명운을 걸고 파병한 군사도 20만명에 미치지 못했다.

▲ 조선군은 한평생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농투성이’들뿐이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런 상황에서 조헌趙憲(1544~1592년)은 ‘하찮은 왜국’과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이참에 오만무례한 일본열도를 아예 정벌해 버리자고 그 유명한 ‘도끼상소’를 올린다. 이 와중에도 정치는 당쟁과 정권투쟁에 골몰한다. 동인 세력은 당시 정권을 장악한 서인 세력들이 자신들의 실정을 덮기 위해 일본의 침략위협을 과장하고 있다고 입에 거품을 문다.

임진왜란의 개전전야開戰前夜 혼란은 북한을 둘러싸고 되풀이되는 ‘흡수통일론’이나 ‘햇볕정책’, ‘북풍조작’이나 ‘안보불감증’처럼 해답 없는 소모적 논란과 너무도 닮았다. 이념적이고 정치적일 뿐 냉철한 ‘계산’과 ‘인식’이 보이지 않아서다.

최근 미국의 사드(THAAD) 한반도 배치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도 예사롭지 않다. 수학자이자 전쟁학자인 리처드슨이 ‘오산’과 ‘오인誤認’이 맞물려 전쟁이 발생한다고 한 것처럼 상황을 냉철하게 계산하지 못하면 인식상 오류가 발생한다. 인식상 오류가 발생하면 냉철한 계산이 되지 않는다. 이순신 장군의 천신만고 ‘명량해전’을 보면서 우리가 한반도의 상황과 북한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계산하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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