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정책 공조 안 된다면…

경기 침체를 우려한 한국은행이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통화정책을 뒷받침할 재정정책을 시행할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통화정책에 재정정책을 곁들이지 않는다면 침체의 늪에 빠진 경기를 반전시키기 어려운 국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벌써 2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썼다.

▲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역사상 최저 수준인 1.25%로 인하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경기를 살리려면 통화정책에 더해 재정정책도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많은 사람의 의견이다.”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통화ㆍ재정정책의 완화적 운용과 함께 구조개혁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슷해 보이는 이 말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해 6월 17일과 지난 10일 각각 언급한 내용이다. 이 총재가 확장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도마에 올린 셈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일 기준금리를 기존의 1.50%에서 0.25%포인트 내린 1.25%로 인하했다. 지난해 6월 1.75%에서 1.50%로 내린 지 1년 만에 사상 최저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낮췄다. 국내 경기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로 국내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 0.7%, 올 1분기 0.5%를 기록하는 등 0%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의 내수진작 효과에 따른 반짝 상승세를 보인 지난해 3분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7분기째 0% 성장세다. 국내 경기의 버팀목인 수출도 17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해운ㆍ조선 산업의 기업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한국경제가 더 깊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기준금리 인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본부장은 “이번 금융통화위원회에선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며 “이는 국내 경기를 보는 시각이 밝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운ㆍ조선 구조조정의 여파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하만으로 꺼져가는 국내 경기에 ‘회복의 불씨’를 붙일 수 있느냐다.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하로 경기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가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김영한 성균관대(경제학) 교수는 “저금리의 영향으로 시중에 풀린 돈이 많다”면서 “문제는 그렇게 풀린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유동성이 적재적소에 사용되려면 적절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는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재정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금리인하로는 경기를 충분히 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부채의 수준이 절대 가벼운 것은 아니다”면서도 “지금은 경기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재정정책의 시행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지난 16일 열린 제2차 민생경제점검회의에서도 적극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에는 여ㆍ야ㆍ정 모두 공감했지만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구체적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추경예산 편성 등의 재정정책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올해 추경 재정정책이 사용될 경우 박근혜 정부 이후 3번째 추경이라서다. 4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로선 2014년만 빼곤 계속해서 추경 카드를 사용하는 셈이다. 2013년에는 ‘초이노믹스’를 부르짖으며 17조3000억원의 추경을 실시했다. 지난해에는 ‘메르스’ 사태의 영향으로 급격하게 얼어붙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추경 등 15조원 이상의 재정보강 카드를 사용했다. 올해도 비슷한 내용의 재정정책을 사용했다.

지난 2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3주 만에 ‘미니부양책’을 꺼내 들었다. 1분기 재정집행 규모를 전년 대비 14조원 늘리고 지난해 연말까지 시행했던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를 6월까지 연장하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런 재정정책에도 경기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이후 대규모 추경 카드를 사용했지만 그 효과가 크지 않았다”면서 “재정건전성 강화를 정책 우선과제로 둔 정부로선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재정정책을 동반하지 않은 경기부양 정책은 오히려 경기를 침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등장했다.[사진=뉴시스]
그렇다고 추경 등의 재정정책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재정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은 통화정책은 경기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박형준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2011년 이후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고 있지만 경기회복세는 미약하기만 하다”며 “유로존과 일본의 사례도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만으로는 경제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의 장기전망이 불투명해 부동산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저금리로 인해 가계부채가 확대될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꼬집었다.

잇따른 재정정책 부담으로 다가와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되레 더 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장기 저금리의 영향으로 형성된 자산버블이 터질 경우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경기회복의 확신이 없다면 자산가격 상승도 곧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며 “부동산 등 자산가격 하락이 주거문제로 이어지면 그나마 살아나고 있는 내수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수출 환경 개선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게다가 본격적인 구조조정도 앞두고 있어 통화정책에만 기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한 교수는 “재정적자를 우려하다가는 일본과 같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며 “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만큼 연구ㆍ개발(R&D), 기술 상용화 정책 등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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