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황 예상보다 나쁘다면…

▲ 정부가 조선업 구조조정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위기를 돌파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현재의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플랜B를 구상하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론에 기대 조선업 구조조정 플랜을 마련한 정부의 선택은 합리적일까. 만약 낙관론과 달리 업황이 더 나빠지면 어쩔 텐가.

약 5조~8조원.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밝힌 조선업계 채권단(국책은행)에 필요한 자본확충 규모다. 혹시 모를 변수까지 고려한 액수는 최대 12조원이다. 조선3사가 자체적으로 내놓은 구조조정안을 분석해 내린 결론으로 보인다. 그러자 한편에선 우려의 시선을 쏟아낸다. 정부가 조선 업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자본확충 규모를 판단한 게 아니냐는 거다.

정부가 판단의 근거로 삼은 건 클락슨리서치(조선ㆍ해운 분석기관)가 지난 3월 발표한 ‘조선업 전망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조선업황이 2018년을 기점으로 정상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클락슨리서치가 조선의 업황을 단순히 ‘긍정적’으로만 본 건 아니라는 점이다. 조선업황을 ‘일반적인 경우(base case)’ ‘나쁜 경우(low case)’ ‘좋은 경우(high case)’로 나눠서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5년 평균 세계 수주 선박수는 1792척이다. 2010~2015년 평균값 2163척의 82.8% 수준에 불과하다. 2018년 예상치는 ‘일반적인 경우’ 1431척, ‘나쁜 경우’ 846척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도 2010~2015년 평균치의 66.1% 수준, 상황이 좋지 않다면 39.1% 수준으로 떨어진다. 정부의 바람대로 조선업황이 2018년을 기점으로 좋아질 공산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국내 조선3사가 제시한 2018년 수주 전망은 어떨까. 조선3사의 2010~2015년 평균 수주액은 현대중공업이 183억 달러, 삼성중공업은 110억 달러, 대우조선해양은 123억 달러였다. 조선3사가 제시한 2018년 예상 수주액은 현대중공업 181억 달러(98.9%ㆍ2010~2015년 평균 수주액 대비), 삼성중공업 59억 달러(53.6%), 대우조선해양 90억 달러(73.1%)다. 클락슨리서치의 ‘일반적인 경우’보다 13.6%나 높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클락슨리서치가 전망한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예상치를 높게 잡았고, ‘나쁜 경우’를 기준으로 보면 삼성중공업이 현실적이다.

결국 정부는 클락슨리서치의 보고서에서 ‘좋은 경우’와 ‘일반적인 경우’만을 고려해 자본확충 규모를 책정했다. 반대로 풀이하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가정을 배제한 셈이다.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는 “오는 8월 말까지 경영컨설팅 결과를 내놓는다고 했으니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조선업은 비즈니스 사이클이 긴 산업인 만큼 그렇게 빨리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는 건 무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유가는 배럴당 60~70달러 이상 오를 때 셰일가스가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과거처럼 오르기 어렵고, 세계 경제회복 속도도 더디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입 물동량 정도만 고려해도 조선업황을 쉽게 낙관하긴 힘들다. 물론 누구도 단정적인 전망을 내놓긴 힘들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너무 낙관적으로 본 거다.”

물론 외부 상황이 좋아지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조선업황을 쥐락펴락하는 경기, 유가, 규제 등 변수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먼저 경기부터 보자.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2.9%, 2017년 3.1%, 2018년 3.1%로 내다봤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실제보다 훨씬 낮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낙관하기엔 이르다. 더구나 엘리엇 등 일부 자산운용업체는 “2018년 글로벌 증시가 폭락할 것”이라는 아찔한 경고까지 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어떨까. 국제유가가 오르면 중단됐던 해양플랜트 사업이 재개돼 조선3사에 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낮은 국제유가 탓에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는 LNG 선박 발주도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기대만큼 가파르게 오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심혜진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국제석유시장의 수요와 공급은 2017년 말이면 균형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셰일가스의 가격 탄력성이 높고, 재고 물량이 소진되려면 일정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제유가는 2017년 말까지도 배럴당 50달러 이하에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지막 변수인 해양환경규제도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 물론 언뜻 보면 조선3사에 유리하다. 세계 각국이 해양환경규제를 강화할수록 LNG선박 등 친환경선박(에코십)의 발주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서다. 기술력이 필요한 친환경선박 분야에선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 

조선업 전망, ‘나쁜 경우’는 쏙 빼

양종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현재 해양환경규제가 심해지면서 LNG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서 “해양환경규제는 유가나 세계 경기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변수이기 때문에 조선업계에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별다른 효과가 없을 거라는 비관론이 더 많다. 해양환경규제가 2~3년 안에 조선업황의 구조를 바꿔놓지는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 정부 예상대로 조선업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국책은행의 자본 건전성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사진=뉴시스]
문제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조선업황이 2018년에도 악화일로를 걷는다면 어떻게 하느냐다. 정부는 최대 12조원의 자본확충 방안 외에 별도 방안은 마련하지는 않고 있다. 다시 말해 구조조정의 칼만 뽑았지 국책은행 자본 건전성 훼손, 대량 실업사태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김상조 교수는 “정부의 낙관론은 구조조정에는 공감하지만 그 누구도 칼(책임)은 빼지 않겠다는 관료주의가 작동한 것”이라면서 “많은 전문가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게 조선업 구조조정의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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