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풀린 돈 돌지 않는다면 …

▲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이다.[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은행이 ‘큰 칼’을 뽑아들었다. 기준금리를 1.25%로 낮춘 것이다. 시중에 통화량을 늘려 ‘죽어가는 경제’에 활력을 넣겠다는 계산에서다. 그런데 시중에 풀린 돈이 정작 돌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물가는 하락하는데, 침체가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다.

‘유동성 함정’이라는 말이 있다. 금융당국이 금리를 아무리 낮추고 돈을 풀어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인즈가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이 됐던 현상을 목격하고서 붙인 말이다.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통화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경기침체의 늪에서 조금이라도 빠져나오기 위해서다.

한국은행은 ‘올 하반기 경기가 나빠질 것을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지난 9일 기준금리를 1.25%로 인하했다. 2011년 6월 3.25%였던 기준금리가 단 한번의 인상도 없이 계속해서 낮아졌다. 당연히 해당 기간 통화량이 늘었다. 본원통화량(화폐발행액과 지급준비금을 합친 통화량)은 2011년 77조5081억원에서 2015년 129조1760억원으로 51조원가량 증가했다.
 
시중에 돈이 얼마나 풀려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통화지표인 광의통화(M2)도 같은 기간 1745조4790억원에서 2241조9703억원으로 늘었다. 금융당국이 통화량을 늘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 진작, 기업 투자 확대→고용 확산→시장 활성화 등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시중에 풀린 돈이 소비 또는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통화정책의 기대효과는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를 인하해도 돈이 돌지 않으면 실물경제는 점차 악화될 것”이라면서 “물가가 오를 거라는 기대심리가 낮아지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손해 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소비가 늘지 않는다”면서 “소비가 감소하니 기업은 제품을 만들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시장에 나온 통화가 실물경제(시장)가 아닌 증시나 부동산으로 유입되는 것도 문제다. 실물을 회복시키기는커녕 증시나 부동산에만 버블이 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불안한 세계 경기에 투자가 줄고 외국 자본마저 빠져나가면 주식시장이 침체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결국 시중에 풀린 돈은 부동산 등의 투기목적 자금에 쏠려 심각한 버블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우려가 ‘가정假定’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통화유통속도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1~2015년 통화량이 증가할 동안 통화유통속도(명목 국내총생산을 광의통화로 나눈 수치)는 0.78에서 0.71까지 감소했다. 본원통화가 몇배의 통화량으로 창출됐는지를 판단하는 지표인 통화승수(광의통화를 본원통화로 나눈 수치)도 같은 기간 21.9배에서 17.1배로 줄었다. ‘대한민국호號가 유동성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거다. 대책이 필요하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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