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이 소비로 이어지는 기간, 버틸 수 있는 방법론 찾아야

경기침체가 갈수록 깊어진다. 시장엔 돈이 돌지 않고 소비자는 지갑을 닫느라 바쁘다. 당장 소득이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혹한을 버티는 기업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어서다. ‘국가가 기본소득을 제공하자’ ‘최저임금을 올리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이젠 나라가 나서라는 거다. 하지만 이 역시도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은데다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 스위스는 가계소득 증대 방안 중 하나인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쳤지만 부결됐다.[사진=뉴시스]

지난 5일, 세계의 이목이 스위스로 향했다. 이날 스위스에선 헌법에 기본소득 개념을 명시할 것인지를 놓고 찬반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결과는 찬성 23%, 반대 76.9%로 부결. 스위스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우수성, 난민 유입 가능성 우려 등 다양한 주장이 기본소득의 도입을 반대하는 이유로 거론됐다.

하지만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스위스의 행보는 기본소득 논쟁에 불을 붙였다. 기본소득이 저성장 기조, 소득불평등 심화, 불안정한 일자리 확산 등을 극복할 대안이라는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단초가 됐다는 얘기다. 기본소득이란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매달 조건 없이 일정액을 지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국민의 최저생계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게 기본 취지다.

이런 기본소득의 도입 계획을 발표하는 나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핀란드는 내년부터 1만명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네덜란드도 내년에 수십개의 도시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할 계획이다. 기본소득을 제도화한 사례도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턴시 시의회는 지난해 말 기본소득 도입을 의결했고, 올 하반기 실시할 예정이다.

기본소득 논의 걸음마 단계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는 우리나라에서도 화젯거리다.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가계소득 증대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어서다. 이명박(MB) 정부 때부터 이어진 친親기업 정책이 기업-가계간 소득불평등만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기본소득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논의 과정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북·서유럽 복지국가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이 워낙 달라서 논의가 쉽지 않다. 논란도 많다.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게 결국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거다. 성남시가 올해부터 시행 중인 ‘청년배당금’ 논란이 대표적이다.

청년배당금은 성남시에 3년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한 만 19~24세 청년에게 매 분기 25만원씩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포퓰리즘 논란과 중앙정부의 반대로 배당금액이 절반가량 삭감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후보 시절 공약한 노인기초연금 20만원도 같은 이유로 현재 차등지급되고 있다.

기본소득 논쟁의 발목을 잡는 건 또 있다. 갈수록 비어가는 나라곳간이다. 기본소득 정책을 시행하는데 필요한 돈, 이를테면 세금이 부족하다는 거다. 전문가들은 MB정권 때 시행된 법인세 인하 방침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매년 평균 7조원의 법인세가 감면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중앙정부의 세수부족액도 매년 6조원에서 10조원 사이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정부에선 담뱃값 인상 등 서민증세 꼼수만 부리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의 이승환 비서관은 “법인세와 소득세를 MB정권 이전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낮은 조세부담률 탓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5 OECD 세수 통계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24.6%로 34개 회원국 중 하위 3위다. 조세부담률 50.9%인 덴마크보다 26.3%포인트 낮고, OECD 평균(34.4%)에도 크게 못 미친다. 금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는 “우리나라의 개인 또는 가계경제가 ‘빈곤선’에 닿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금액은 30만원”이라면서 “이를 위해선 국내 조세부담률을 10%포인트만 올려 OECD 평균에만 맞춰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금을 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법인세든 간접세든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금민 상임이사는 “조세저항을 뿌리치려면 부자증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부자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도 무시하기 어렵다. 기본소득이 아직은 ‘풀기 힘든 단추’쯤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많은 전문가들이 기본소득 철학과 맥이 맞닿아 있는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기본소득이든, 최저임금이든 소득을 늘려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기조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많은 부분에서 검증이 됐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임금인상이 소득불평등 해소와 저임금 노동자의 삶 개선에 분명한 효과가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 선순환을 일으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임금이 인상되면 소비가 늘고, 그 돈이 기업에 돌아가서 다시 임금이 오르는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는 얘기다. ILO·IMF·OECD등 국제기구가 우리 정부에 최저임금 인상을 권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 논의 과정도 순탄치 않다는 거다.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 자영업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서다. 특히 10인 미만의 영세 소기업들은 최저 시급 인상을 통한 임금 인상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 2016년 최저시급은 6030원으로 직장인 평균 점심값(6300원)보다도 적다.[사진=뉴시스]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 관계자는 “영세기업 대표 중에는 자신이 고용한 임금노동자보다도 적은 임금을 가져가는 경우도 많다”면서 “물건은 안 팔리는데 임대료만 자꾸 올라서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길 리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임금 인상 때문에 인력감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10인 미만 소기업은 전체 중소기업의 93%를 차지하며, 국내 전체 고용의 44.3%를 감당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기가 선순환을 일으킬 때까지의 기간을 중소기업, 영세기업, 자영업체가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분석도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계소득이 늘어나더라도 소비행위가 아닌 부채를 갚는데 사용할 공산이 커서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 순가처분소득(소비나 저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소득) 837조1767억원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44%다. 이는 우리나라 가계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돈을 모두 모아도 가계부채를 전부 갚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한 한국은행에 따르면 소득으로 자신의 빚을 갚기 어려운 한계가구가 158만 가구(전체 1072만 가구의 14.7%)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저임금 인상의 엇갈린 반응

아쉽게도 최저임금 인상과 경기 선순환의 ‘간극’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정의당이 최저시급 1만원 인상운동과 함께 중소기업·자영업 지원방안을 내놓은 게 그나마 눈에 띄는 대안이다. 정의당은 카드수수료 인하, 저금리 대출, 공적보증 등을 통한 금융비용 인하, 건강보험료 부과방식을 소득중심으로 전환, 시간제 일자리 고용 시 임금 지원, 세제지원을 지원방안으로 내놨다.

하지만 이런 지원 방안도 중소기업, 영세업체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김낙년 동국대(경제학) 교수는 “경제 논리 상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면서도 “잃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되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구제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바로 증세”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이든 최저임금 인상이든 갈길이 멀다.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은데다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어서다. ‘소득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담론을 공론화해야 하는 이유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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