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1일~올 6월 21일 구조조정기업 5곳 보고서 조사해보니…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진해운, 현대상선. 대한민국호號 구조조정의 한복판에 서 있는 5개사다. 업황 침체 등을 이유로 이 회사들의 실적은 곤두박질쳤고, 주가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매도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증권사 보고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 국내 증권사는 여전히 매도 보고서 발간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16만원대를 맴돌던 포스코의 주가가 지난 1월 21일 15만6000원까지 하락했다. 2004년 8월 16만원을 넘어선 이후 11년여 만의 최저가였다. 중국의 공급과잉으로 인한 철강업계의 불황, 부채 증가, 해외 계열사의 실적 부진 등의 악재가 줄줄이 겹친 탓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68년 창사 이후 47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가 하락세는 더 가팔라졌다. 시장의 우려가 주가에 반영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증권사 보고서는 단 한번도 포스코의 주가 하락을 지적하지 않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21일부터 지난 21일까지 1년 동안 증권사가 발행한 포스코 보고서는 총 264건이다. 하지만 주가 하락세를 예측하고 매도보고서를 낸 증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중립 의견을 낸 보고서가 5건, 투자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보고서 5건이 전부였다. 나머지 254건은 모두 매수보고서였다. 지난해 7월 실적 부진의 영향으로 52주 신저가 행진을 이어갈 때도 투자자에게 과감히 매도하라고 의견을 제시한 증권사는 없었다.

주가가 곤두박질 칠 때도 매수의견만 제시했다. 물론 철강 사업의 경쟁력은 유지하고 있는 만큼 회복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업황 부진의 해소되면 실적 턴어라운드가 가능하기 때문에 저가매수의 기회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포스코의 매도보고서가 전무했다는 건 증권사의 생태계를 의심해볼 만한 사례로 충분하다.

▲ 구조조정 이슈가 한창인 대우조선해양의 증권사 보고서 103건 중 매도 의견 보고서는 3건에 불과했다.[사진=뉴시스]
그렇다면 ‘죽음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조선ㆍ해운기업의 증권사 보고서는 어떨까. 해운ㆍ조선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업황도 당분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긍정적인 보고서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해운ㆍ조선 구조조정의 한복판에 서있는 대우조선해양ㆍ삼성중공업ㆍ한진해운ㆍ현대중공업ㆍ현대상선 등 5개사의 증권사 보고서에서도 ‘매도 의견’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더스쿠프(The SCOOP)가 2015년 6월 21일~2016년 6월 21일 에프앤가이드에 등록된 보고서를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개사 관련 보고서는 총 358건이었다. 그중 매수보고서는 99건, 중립보고서가 214건, 비중축소 25건, 매도보고서 5건, 의견없음 15건 등이었다. 비중으로 따지면 중립보고서가 59.78%로 가장 많았고, 매수보고서가 27.65%로 뒤를 이었다. 매도보고서의 비중은 1.39%에 불과했다.

조선업 위기의 핵심에 있는 대우조선해양을 살펴보자. 대우조선해양은 직원비리와 방만경영이 고구마 줄기 엮이듯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한 직원은 지난 8년 동안 180억원의 회사돈을 빼돌려 호화생활을 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선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 정황도 드러났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의 주가는 지난해 7월 13일 1만3300원에서 7월 20일 7450원으로 44%가량 폭락했고 현재는 4200원대로 더 주저앉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매도보고서는 단 3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HMC투자증권 한곳에서 나온 것으로 지난해 7월과 10월, 올해 3월에 발간됐다. 지난해 6월 21일부터 올해 6월 21일까지 발간된 대우조선해양 관련 보고서가 103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도보고서의 비중은 3%에 불과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와 애널리스트가 기업의 눈치를 보고 있다”면서 “민감한 이슈가 있는 기업의 보고서는 안 쓰느니만 못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증권사 보고서의 문제점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만큼 업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라면서도 “수익구조, 영업활동 등에서 독립성을 갖지 못한 국내 리서치센터의 생태계 때문에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매도보고서 3건뿐

최근 구조조정에 돌입한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은 투자 목적 유가증권과 부동산 매각 등의 자구안을 시행 중이다. 규모는 3조5000억원으로 하이투자증권 매각, 태양광ㆍ로봇 사업 분야 분사, 인력구조조정 등이 포함돼 있다. 자구안이 계획대로 실행되면 부채비율은 134%(지난 1분기 기준)에서 100% 이하로 떨어진다. 차입금 규모도 8조5000억원에서 6조원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하지만 자구안만으로는 현대중공업의 정상화가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업황이 여전히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신조선 발주량은 지난해 389만CGT로 지난해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업황개선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번 자구안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증권사의 보고서는 여전히 매수 일색이다. 지난해 6월 21일부터 올해 6월 21일까지 발간된 총 105건의 현대중공업 보고서 중 매수보고서는 61건으로 58.1%에 달했다. 중립보고서는 42건(40%), 의견없음 2건(1.9%) 등이 발간됐고 비중축소, 매도 의견을 낸 보고서는 한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진해운의 사례도 매도보고서의 불편한 진실을 잘 보여준다. 지난 5월 4일 채권단 자율협약에 돌입한 한진해운은 경영정상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 용선료 협상이 불투명한데다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연체 문제도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긴박한 상황을 투자자에게 제대로 알리고 있는 증권사가 없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발표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증권사 보고서는 각각 5건, 50건이다. 물론 55건의 보고서 가운데 매도를 제시한 보고서는 한건도 없다. 문제는 현대상선의 경우 지난해 12월 10일, 한진해운은 자율협약이 체결되기 한달 전인 4월 1일 이후 발표된 보고서가 한건도 없다는 것이다.

고객 신뢰 저버리는 증권사

심지어 지난 5월 18일 금융감독원이 조선ㆍ해운 등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기업의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을 때도 증권사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투자위험을 알리는 비상벨로서의 역할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시장의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증권사 보고서는 투자자를 기망하는 행위나 다름없다”며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해지지 않는다면 이를 참고한 투자자의 피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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