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한국 증시에서 Sell을 부를 수 있을까

▲ 국내 증권사들은 매도보고서가 나올 수 없는 태생적 한계에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1년 동안 국내 증권사가 발간한 매도보고서의 수는 단 5건이다. 산업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째 이상하다. 애널리스트의 분석력이 부족한 탓일까. 그렇다면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정확한 분석을 내놓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가 도입되면 달라질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크다.

지난 5월 24일. 유안타증권의 로보어드바이저 ‘티레이더’가 삼성전자의 주식을 매수하라는 의견을 내놨다. 지난 3월 구글의 AI 알파고가 이세돌을 상대로 이상한 수를 던졌던 것처럼 이번에도 뜻밖의 의견이었다. 삼성전자의 당시 주가가 120만원선에서 보합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본격 상승세’를 예상하는 보고서를 발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127만원선에서 맴돌던 삼성전자 주가가 지난 22일 144만5000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주요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삼성전자 매수보고서를 쏟아내기 시작한 건 주가가 오를 대로 오른 7일(종가 139만8000원) 이후였다. 증권업계에 AI 바람이 불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의 의견이 적중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도 로보어드바이저가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로보어드바이저의 장점은 뚜렷하다. 무엇보다 퀀트와 빅데이터, 머신러닝 등의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상장기업의 공시자료와 각종 투자지표를 분석해 시장상황을 예측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단시간에 다룰 수 있어 분석 능력이 사람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분석력과 정확도가 로보어드바이저의 수준을 밑도는 건 AI의 가공할 만한 계산능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증권사와 상장기업 간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기업에 악영향을 미치는 보고서를 냈다간 기업을 탐방할 때나 정보를 요청할 때 부담으로 작용할 수가 있다”면서 “보고서를 내기 위해선 기업 정보를 알아야 하니 결국 기업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증권사의 수익구조에도 문제가 있다. 여은정 중앙대(경영학) 교수는 “국내 증권사의 수익구조는 지나치게 브로커리지(중개 수수료)에 편중돼 있다”면서 “증권사 입장에서는 주식을 팔아야 수익이 나오기 때문에 매수보고서에 치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보면 매수의견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지난 1년간 나온 보고서의 매수, 매도의견의 통계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15년 6월 21일~2016년 6월 21일 1년간 나온 보고서는 총 2만3644건이었다. 그중 매수의견은 1만8739건으로 전체의 79. 25%를 차지했고, 매도의견은 단 5건으로 0.02%에 불과했다. 게다가 5건의 매도보고서도 두곳의 증권사, 두명의 애널리스트가 발간한 것이다. 김선제 성결대(경영학) 교수는 “분석은 정량적 평가, 정성적 평가로 종합적으로 이뤄진다”면서 “사람마다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때문에 기업은 반발하고, 애널리스트는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로보어드바이저가 매수 의견 일색인 증권업계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익명을 원한 증권업체의 한 관계자는 “로보어드바이저가 객관적인 분석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를 가공해서 내보내는 건 결국 사람”이라면서 “기존 애널리스트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매도의견을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선제 교수도 “로보어드바이저의 분석과 의견을 그대로 내놓는다면 개선될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로보어드바이저를 프로그래밍하는 건 사람이기 때문에 입맛에 맞게 조절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 로보어드바이저 시스템을 개발ㆍ공급하고 있는 증권전문업체 싱크풀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자료분석부터 종목선정, 뉴스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AI가 처리한다”면서 “직접적으로 매도의견을 내는 건 아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뉴스와 정보는 충분히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은정 교수는 “로보어드바이저의 프로그램을 짤 때 어떤 데이터베이스에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균형점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AI의 분석력은 이미 애널리스트의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그럼에도 투자자를 위한 냉철한 매도보고서는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어차피 AI를 만드는 것도 사람, AI가 만든 자료를 가공하고 활용하는 것도 사람이라서다. 기업의 돈으로 수익을 내는 증권사의 생태계도 문제다. 기업의 정확한 실상을 공개했다간 수익이 날아갈 게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매수보고서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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