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증권사 보고서에서 배울 점

▲ 미국에선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사고 파는 시장이 활성화돼 있기 때문에 독립리서치센터가 활성화될 수 있다.[사진=뉴시스]
증권사가 맘놓고 매도보고서를 못 내는 건 우리나라만의 문제일까. 역사적으로 볼 땐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2000년대 미국에서도 왜곡된 보고서가 문제를 일으킨 일이 많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엔 독립 리서치 제공회사(IRP)가 활성화돼 있다. 미국, 유럽에서 정확한 매도보고서가 발간되는 이유다.

객관성을 잃은 애널리스트 보고서, 증권사와 상장사의 이해 상충 문제.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유별난 일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경제를 뒤흔든 ‘닷컴버블’의 원인 중 하나는 애널리스트들의 왜곡된 보고서였다. 이 사건은 미국 정부와 투자자들이 ‘왜곡된 보고서가 일으킬 수 있는 파장’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했다.

그렇다면 해외에선 매도보고서의 발간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리서치센터의 독립성을 첫째 이유로 꼽는다. 우리나라의 리서치 센터는 대부분 증권사(In-House)에 속해 있다. 이 때문에 리서치센터가 증권사 입장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유럽엔 독립 리서치 제공회사(IRP)가 활성화돼 있다. 독립 투자은행 버커리 노이스(Berkery Noyes)에 따르면 미국에서 활동 중인 IRP는 2013년 기준으로 250여개가 넘었다.

IRP가 객관적이고 정확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보고서를 팔아서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고객이 직접 보고서의 가치를 평가하고 값을 치른다는 거다. IRP의 애널리스트가 좀더 정확한 분석과 평가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정확한 평가와 분석을 제공할수록 애널리스트의 위상과 파급력이 올라간다”면서 “스타급 애널리스트의 말에는 힘이 실리고 주식가치의 변동성도 높아져 상장사가 함부로 압력을 넣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분석→시장 반응 →기업 압박 탈피→더 객관적 의견’이라는 선순환 구조가 IRP를 지탱해주는 힘이라는 얘기다. 이를 역으로 돌려보면, 우리나라에서 질 좋은 보고서가 나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윤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리서치센터는 비즈니스 모델이 부실하다”면서 “리서치 보고서는 서비스라는 인식이 강하고, 자문시장과 기관투자자는 규모가 적어 구매처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익구조가 부실하다 보니 독립 리서치센터를 차리기 힘들고 증권사는 인센티브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기능이 위축된 증권사 보고서를 돈 주고 볼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보고서의 평가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은정 중앙대(경영학) 교수는 “애널리스트를 평가하는 기준에 보고서 수와 조회수 등이 포함된다”면서 “정확성이 떨어지는 단기보고서가 쏟아지는 건 이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김선제 성결대(경영학) 교수도 “기관투자자가 거래 증권사를 선정할 때 보고서의 평가 배점을 높이는 것이 하나의 개선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애널리스트 한명이 담당하는 기업수가 많은 점도 문제다. 해외에선 한팀이 한 회사를 맡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우리나라는 한명당 30~40개의 회사를 맡기도 한다. 매도보고서를 과감하게 내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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