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형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에게 묻다

지난해 3월, 증권사들은 경쟁사 대비 좋은 실적을 낸 대우조선해양을 치켜세웠다. 증권사 리포트는 매수 일변도였고, 투자자들은 별 고민 없이 베팅을 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실적은 부풀려졌고, 회계는 분식粉飾됐다. 당시 매도보고서를 작성한 김형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애널리스트들이 이를 몰랐겠는가”라고 반문했다.

▲ 김형근 애널리스트는 “아직 기업에서 매도보고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수요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라. 경쟁사간 기술력 격차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같은 선박을 수주하는데 한쪽은 적자를 보고, 한쪽은 흑자를 본다면 당연히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다른 애널리스트들이 몰라서 못 썼겠나. 알고도 못 쓴 거다. 현실적인 제약은 그만큼 많다.”

2015년 3월 대우조선해양의 매도보고서가 나왔다. 눈부신 실적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을 치켜세우는 다른 증권사와는 스탠스가 180도 다른 보고서였다. 이 매도보고서를 작성한 이는 김형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 2013년 한해를 통틀어 유일하게 매도보고서를 작성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주인공이다.

그는 2014년 2월 더스쿠프(The SCOOP)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는 증권사의 매도보고서가 좀 더 늘어날 것”이라면서 희망적인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지금도 매도보고서는 여전히 희귀보고서에 속한다. 김 애널리스트를 2년여 만에 다시 찾은 이유다.

✚ 요즘 매도보고서에 대한 증권사의 분위기는 좀 어떤가. 예전과 달라진 게 있나.
“이전과 많이 다르다. 증권사들이 알아서 매도보고서를 안 쓰려 했던 과거와 달리 ‘Hold(유지)’와 ‘Sell(매도)’을 일정한 비율로 유지하려 애쓰는 증권사들이 꽤 있다. 매도보고서를 내야 한다는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 하지만 최근 1년간(올해 5월말 기준) 매도보고서가 고작 5개다.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매도보고서가 쉽게 나올 만한 환경이 아직은 아니다. 증권사는 여전히 ‘을乙’이고, 기업은 ‘갑甲’이다.”

✚ 기업이 바뀌지 않았다는 얘긴가.
“그렇다. 우리나라 기업은 매도보고서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

✚ 기업 입장에선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 하지만 어떤 기업은 ‘Hold’를 쓰는 것조차 불만을 표시한다. 매도보고서를 쓴다고 하면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기업도 있다. ‘근거를 대라’면서 압박하는 건 기본이다.”

✚ 당연히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 하지만 그 근거를 실적으로만 얘기하긴 어렵다. 매수를 하는 종목이라고 해서 늘 ‘좋은 기업’도 아니고, 매도를 하는 종목이라고 늘 ‘실적이 나쁜 기업’도 아니다. 간혹 실적은 엉망인데 주가가 오르는 기업, 실적은 좋은데 주가가 떨어지는 기업도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물론 실적도 엉망이고, 모멘텀도 안 좋은데 ‘매수’를 추천하는 건 문제다.”

불황에 증권사 입지 약화

✚ 쉽게 말해 악어와 악어새 같은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증권사가 기업 눈치를 더 많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경기침체 장기화의 여파가 크다. 먼저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이 변했다. 원래는 주가 변동에 따라 매매가 이뤄질 때 생기는 매매수수료가 증권사의 전통적인 수익원이었다. 하지만 증시는 제약이나 바이오 같은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박스권을 맴돌고 있다. 뮤추얼펀드의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펀드에 투자자본이 들어오지도 않는다. 결국 증권사는 다른 수익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기업공개(IPO), 증자, 회사채 발행, 구조화금융(Structured Finance), 인수ㆍ합병(M&A) 등을 주간하거나 자문하는 업무(IB)의 비중이 더 커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업무를 맡으려면 기업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 선진국의 환경은 우리와 다른가.
“미국만 해도 IB업무를 별도 법인이 담당한다. 당연히 매도보고서를 작성하는 건 IB업무와 별개다.”

✚ 우리나라도 IB업무를 분리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말은 쉽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증권사에서 IB업무를 분리하면 이 업무를 은행권에 몰아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극단적으로 기존 증권사는 문을 닫으라는 얘기다.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모순이 있다.”

✚ 경기침체 여파로 애널리스트들의 수도 크게 줄었다. 그래서 보고서의 질이 떨어질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연하지 않은가. 기업분석이 제대로 될 리 없으니 매도의 근거는 더 약해질 거고, 매도보고서도 나오기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 이전에 ‘헤지펀드들이 많아지고 규모가 더 커지면 매도보고서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공매도를 할 수 있는 헤지펀드는 매수와 매도를 모두 이용해서 수익을 얻는다. 그래서 매도보고서의 주요 수요자인 헤지펀드가 늘어나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공매도 제약이 있는 뮤추얼펀드 중심이다. 매도보고서의 수요자는 있지만 여전히 규모가 작다는 거다.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 개인투자자들도 실제 공매도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하는 것 아닌가.
“맞다. 거기에 기업들이 인정을 좀 한다면 매도보고서는 좀 더 많아질 수 있다.”

✚ 결국 닭(기업 변화)이 먼저냐, 달걀(매도보고서 수요 증가)이 먼저냐 하는 문제로 보인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최근 금융당국이 국제회계기준(IFRS)에 메스를 대고 있기 때문이다.”

✚ 무슨 말인가.
“IFRS는 사실 자율공시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숨기고 싶은 정보는 숨길 수 있다. 가령 기업 이미지에 안 좋은 매출채권 내역 등과 같은 우발채무 내용을 숨길 수 있다는 거다. 그런 내용들이 없으면 애널리스트들이 무얼 보고 그 기업을 분석해서 리포트를 내놓겠는가.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도 보고서만 제대로 나왔다면 투자자들이 손해를 덜었을 거다. 그런데 최근 수주산업의 회계절벽이 불거지면서 정부가 수주산업의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해 핵심감사제(KAMㆍKey Audit Matters)를 도입했다. 애널리스트는 이를 통해 기업분석을 좀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매도보고서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매도보고서가 일찍 나왔다면 대우조선해양 투자자들의 손실이 줄었을지 모른다.[사진=뉴시스]
핵심감사제는 ‘우발채무가 기업 매출의 5%를 넘는 경우 관련 채무 내용을 모두 나열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올해 2분기 수주산업에 적용되고, 2018년부터는 전체 기업에 적용될 전망이다. 김 애널리스트는 “이런 제도가 주식시장을 좀 더 투명하고 건전하게 만든다”면서 “제도의 실효성에 관한 이견들은 있지만 방향성이 옳은 만큼 매도보고서가 좀 더 나올 수 있는 환경은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희망을 입에 담았지만 이는 2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증권업계의 생태계가 바뀌지 않으면 매도보고서 실종사태는 계속 이어질 거라는 얘기다. 매도를 매도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 이상한 시대를 우리는 당분간 살아야 할 것 같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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