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변신’으로 명차와 대적하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이 열린 해다. 빛처럼 빠른 세대를 사는 현대인에겐 고릿적 얘기다. 지금도 도로를 질주하는 그랜저는 이때 출시된 모델이다. 올해로 딱 30주년을 맞은 셈인데, 그 의미가 상당하다. 로얄살롱, 포텐샤, 아카디아, 오피러스, 알페온 등과의 격전을 이겨내며 ‘스테디셀러’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그랜저 30년, 격전의 기록’을 주목한 이유다.

▲ 그랜저는 현대차가 1986년부터 현재까지 생산하고 있는 전륜구동 방식의 고급 준대형 세단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인 1978년. 현대차는 독일 포드의 ‘2세대 그라나다 모델’을 국내에 들여와 출시했다. 산업화가 가속화하면서 고급차 수요가 크게 증가한 데 따른 대응책이었다. 온전히 국내차로 보긴 힘들었지만 어찌 됐든 ‘그라나다 프로젝트’는 통했다. V형 6기통 엔진의 뛰어난 성능과 각종 첨단 편의장치가 고급차 수요자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그런데 1978년 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기름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고급차 수요가 냉랭冷冷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의 자동차 정책 방향이 ‘국산화’에 맞춰졌다. 출시 당시만 해도 쌩쌩 달릴 것 같던 그라나다는 1985년 ‘단종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사이 새한자동차가 독일 오펠사의 레코드를 들여와(1975년) 조립 생산한 ‘로얄 시리즈’가 고급차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국산의 흔적이 그나마 있었기 때문에 ‘그라나다’와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러던 1983년 새한자동차는 대우차로 인수됐고 로얄 시리즈는 더욱 승승장구했다.

현대차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대형차 시장을 잡기 위해 ‘기술’을 배우고 키웠다. 때마침 1988년 서울올림픽의 공식 스폰서였던 일본 자동차 기업 미쓰비시가 ‘2세대 데보네어’를 개발한다는 소식을 접한 현대차는 공동개발을 제안했고, 인고의 시간을 거쳐 새로운 대형차를 내놨다. 1986년 탄생한 바로 이 차량이 ‘그랜저(Grandeur)’다. 디자인은 현대차가, 설계는 미쓰비시가 맡았다. 하지만 ‘웅장, 장엄, 위대하다’는 뜻을 가진 그랜저가 길고도 모진 세월을 버티고 스테디셀러로 우뚝 설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랜저는 국내차를 대표하는 장수브랜드 중 하나다. 나이로 따지면 31년을 이어오고 있는 쏘나타에 이어 3위다. 하지만 그랜저가 갖는 의미는 쏘나타 이상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대형 세단과 격전을 벌이며 성장했다. 위기의 순간 ‘포지셔닝’을 바꾸는 전략도 과감하게 구사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그랜저가 남긴 ‘격전의 기록’을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각그랜저의 탄생 = 1세대 그랜저는 직선이 강조된 디자인 때문에 ‘각角그랜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이 딱딱한 디자인은 권위적인 모습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고소득 소비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성능도 우수했다. 초기에 생산된 2.0엔진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 제어 연료 분사식이었다. 최대출력 120마력, 최대토크 16.2 토크, 최대시속 162㎞/h의 힘을 뽐냈다. 대형차 최초로 전륜구동을 택해 부드러운 승차감을 선보였다. 나중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모델을 추가했다.

포텐샤 등장에 ‘움찔’

그랜저가 진격하자 대우차가 반격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1987년 대우차는 로얄살롱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을 수차례 내놨다. 하지만 부분변경 수준으로는 그랜저의 상품성을 넘기 어려웠다. 1991년 로얄 시리즈가 사실상 단종 수순을 밟으며 시장에서 맥이 끊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랜저의 라이벌은 로얄살롱뿐만이 아니었다. 현대차와 합치기 전 기아차 역시 그랜저의 독주에 제동을 걸기 위해 제휴관계였던 마쓰다의 최고급 세단인 루체를 1992년 들여와 ‘포텐샤’를 출시했다. 이 차는 그랜저보다 큰 차체로 좋은 반응과 인기를 얻었다. 특히 후륜구동 방식을 택하면서 전륜구동의 그랜저에 맞불을 놓은 게 시장에서 통했다. 현대차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했고, 1992년 ‘뉴 그랜저’를 론칭했다. 그해 단종된 1세대 그랜저는 약 9만대에 달하는 판매고를 남겼다.

■ 뉴그랜저의 변신과 위기 = 뉴 그랜저는 외관에 변화를 줬다. 곡선미를 살린 유럽풍 다이내믹 스타일에 중후한 이미지를 넣었다. 당시 국내 시판 차종 가운데 가장 큰 차체와 실내공간을 갖추는 등 상품성도 끌어올렸다. 에어백, 능동형 안전장치(TCS), ECM 룸미러, 차체제어시스템(ECS), 4륜 독립현가장치 등 국내 자동차 중 최초로 탑재된 장치도 많았다. 특히 그랜저의 아이덴티티인 트렁크 정중앙에 차명을 새기는 방식이 최초로 적용된 모델이기도 하다.

그러자 대우차가 또다시 반격에 나섰다. 1994년 V6 3.2리터 엔진이 탑재된 대우 아카디아를 출시하며 우월한 배기량을 뽐냈다. 현대차는 미쓰비시의 V6 3.5리터 사이클론 엔진으로 맞불을 놨고, 이 선택은 옳았다. 뉴 그랜저는 국산 대형차 시장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았다. 2005년 단종되기까지 총 16만4927대를 팔아치웠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잘나가던 ‘그랜저 시리즈’에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1990년대 중반, 일본차를 시작으로 글로벌 메이커들이 속속 국내시장에 진출했다.경쟁이 예상보다 더 치열해지자 현대차로선 뉴 그랜저 이상의 모델이 필요했고, ‘부분변경 모델’을 차세대 플래그십 모델로 낙점했다. 한발 더 나아가 현대차는 고급화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이름까지 바꿨다. 바로 ‘다이너스티’다.

플래그십 세단의 지위를 잃다

초기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미지 차별화 전략에도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다이너스티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지 못했다. 특히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문 메이커 쌍용차가 1997년 내놓은 ‘체어맨’이 견고한 힘을 냈다. 개발의 시작과 끝을 독일 명차 브랜드 벤츠가 함께했다는 홍보가 고급차 수요심리를 흔들면서 체어맨은 외환위기 시절에 론칭됐음에도 다이너스티보다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현대차는 체어맨에 맞설 카드로 새로운 브랜드를 택했다. 국내 최초로 V형 8기통 엔진을 얹은 에쿠스(1999년 출시)였다. 이 차는 각진 차체와 호화롭게 꾸민 실내 등을 강점으로 현대차를 대표하는 최고급 세단으로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 그랜저 XG에 숨은 함의 = 문제는 뉴 그랜저였다. 다이너스티와 에쿠스에 플래그십 세단의 지위를 빼앗긴 뉴 그랜저는 명맥을 이어가야 하느냐는 논쟁의 벽에 부닥쳤다. 이때 현대차는 그랜저의 차급을 낮추기로 결정한 것이다. ‘뒷자리 오너용’ 대형차로 시작된 그랜저의 포지션을 ‘자가운전용’ 대형차로 바꾼 것이다.

그래도 브랜드가 있는 그랜저를 팔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 결정엔 특별한 함의含意가 숨어 있다. 당시 에쿠스와 쏘나타의 사이를 메워주던 준대형 세단 ‘마르샤’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현대차 경영진은 ‘그랜저’를 구원투수로 등판시키기로 했다. ‘그랜저 XG’는 1998년 10월 1일 그렇게 재탄생했다.

그랜저 XG와 기존 모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스포티한 디자인이다. 원래 마르샤 후속으로 개발된 차량인 만큼 날렵한 디자인으로 공기저항수를 최소화했다. 도어 새시를 없애고 개방적인 하드탑 스타일을 적용해 세련미를 강조했다. 더 큰 의미는 미쓰비시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델이라는 점이다. 그랜저 XG는 쏘나타EF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활용해 독자 개발됐다.

이 모델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그랜저 시리즈 최초로 미국과 유럽시장에 진출해 11만5008대를 팔았다. 당시 현대차가 해외 시장에서의 인지도가 낮았던 것을 감안하면 눈부신 실적이다.

■ 그랜저 TG의 도전과 저항 = 밀레니엄 시대를 맞은 현대차는 2005년 4세대 그랜저를 출시했다. 역대 가장 성공한 그랜저 시리즈로 꼽히는 ‘그랜저 TG’다. 이 모델은 현대차ㆍ기아차가 독자 개발한 6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했다. 이를 통해 엔진 성능은 물론 출력과 연비까지 획기적으로 향상하는 기술적 진보도 이뤄냈다.

버튼시동장치, 블루투스 핸즈프리 에코 드라이빙 시스템 등 각종 신규 사양과 첨단 기술도 새롭게 적용해 고품격 프리미엄 세단의 품격을 갖췄다. 그랜저 TG는 내수ㆍ수출을 통틀어 가장 많은 판매량(55만8523대)을 기록한 모델이기도 하다. 2005년 이후 르노삼성 SM7과의 양강 대결에서, 2009년 기아차 K7이 가세한 준대형차 삼국지 시대에서 승기를 잡은 결과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그랜저 TG는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BMW 5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 등 동급 수입차량의 내수 잠식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은 우위를 점했지만 상품 경쟁력을 자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차는 총 4500억원의 개발비를 쏟아부어 ‘그랜저 HG(2011년 출시)’를 완성했다. ‘웅장한 활공’을 의미하는 ‘그랜드 글라이드’를 콘셉트로 디자인한 이 모델은 역동적인 캐릭터 라인과 풍부한 볼륨감의 조화, 고급스러우면서도 당당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포지셔닝 바꿔 해외시장 공략

그랜저 HG의 의미는 수요층을 젊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확연히 젊어진 디자인에 엔진 다운사이징 등이 엮이면서 그랜저를 선호하는 젊은층이 늘어났다. 국내 최초로 적용한 최첨단 주행 편의 시스템인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도 젊은층을 유인하는 데 한몫했다. 이런 저변의 확대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준대형차로는 이례적으로 월간 판매 1위(2011년 4월)를 달성할 정도의 인기를 모았다.

그럼에도 그랜저 시리즈는 여전히 도전의 벽 앞에 서 있다. 지난해 한국GM이 출시한 준대형급 ‘임팔라’가 흥행을 거뒀다. 기아차는 올해 신형 K7을 출시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랜저 HG의 지난해 판매량은 전년 대비 4% 줄어든 7만6317대에 그쳤다. 국산 준대형 세단시장에선 여전히 독보적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경쟁차종의 뜨거운 기세를 감안하면 긴장의 고삐를 늦추긴 어렵다. 현대차가 올해 말 6세대 그랜저를 조기 투입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0년 내공을 또다시 발휘할 때가 왔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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