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타족에 우는 분양권 시장

불을 따라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시세차익이 예상되는 곳만 몰려다니는 이른바 ‘단타족’. 분양권 시장이 빠르게 치고 빠지는 단타족 때문에 얼룩지고 있다. 시장에 거품이 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점프통장ㆍ다운계약서 등 불법행위까지 판을 치고 있어서다. 문제는 이들을 단속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 시세차익이 예상되는 곳에 들어갔다가 초기에 팔고 나오는 '부동산 단타족'이 늘어나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부동산 시장을 단타족族이 흔들고 있다. 단타족이란 단기간에 내 돈을 좇아 수익을 내고 빠져나오는 투자자들이다. 시장에서는 이들을 두고 체리피커(Cherry picker)라는 별명을 붙였다. 체리피커란 접시에 담긴 신포도와 체리 중 달콤한 체리만 골라먹는 사람을 말한다. 쉽게 말해, 단타족이란 시세차익이 예상되는 곳에 몰려 분양권을 매수했다가 단기간에 차익만 남기는 얌체 투자자를 지적하는 용어다. 

이들에게 청약통장은 더이상 내 집 마련을 위한 동아줄이 아니다. 당첨만 되면 분양권 전매를 통해 수천만원, 많게는 1억원대 웃돈을 챙길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복권’에 가깝다. 체리피커가 부쩍 늘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분양권 시장에 광풍이 불고 있어서다. 2013년 1분기에 213건에 불과하던 서울 분양권 거래량은 2015년 4분기 1298건으로 급증했다.

올 2분기에는 1672건을 기록했다. 올해 1~5월 분양권 총 거래량(2830건)도 2008년 이후(같은 기간) 최대치를 찍었다. 서울 분양권의 거래량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2015년 4월 시행)다. 실제로 지난해 1분기 815건에 불과하던 분양권 거래량은 분양가 상한제 폐지 후인 2분기 총 1526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시행된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분양권 시장의 활황을 부추겼다. 이 규제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원리금을 처음부터 갚아야 해 상환 부담이 크다. 하지만 분양 받을 때 적용되는 중도금 등 집단대출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내 집을 마련하려는 실수요자들은 분양권 시장으로 쏠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분양권 시장의 활황은 체리피커에게는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떡이나 다름없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분양권만 확보하면 수천만원의 시세차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월 분양된 서울 서초구 ‘신반포 자이’는 일반분양분 153건 중 89건의 손바뀜이 발생했다.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아파트의 프리미엄은 3000만〜5000만원선. 그러나 초기 손바뀜이 일어난 뒤 현재는 거래가 뜸하다고 한다. 당첨자의 절반 이상이 분양계약 초기에 분양권을 팔고 나간 체리피커였다는 방증이다.

서울 송파구 가락시영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헬리오시티’도 차익을 노린 당첨자들의 명의변경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이 단지는 일반분양 물량이 1200가구가 넘기 때문에 손바뀜이 더 활발할 전망이다. 서울보다 분양가가 낮은 지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 1월 대림산업이 분양한 대구 중구 대신동 ‘e편한세상’ 아파트는 일반분양 물량 305가구 가운데 245건이 전매됐다.

분양권 시장에 몰리는 돈

문제는 이들이 활개를 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실수요자에게 돌아간다는 점. 단타족의 단기투자가 과도할 경우 주택 가격에 거품이 끼기 때문이다. 이 거품은 많은 프리미엄(웃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실수요자들이 떠안는다.

불법 행위도 판을 친다. 인기 아파트의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지방과 수도권을 오가는 ‘점프통장’이 횡행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점프통장이란 청약 당첨을 목적으로 다른 지역의 거주자가 소유한 청약통장을 대거 사모아 해당 지역에 위장전입해 청약하는 수법을 말한다. 기획부동산처럼 ‘큰손’들은 가점 높은 청약통장을 뭉텅이로 청약해 분양권을 받아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넘긴다.

웃돈 가격이 치솟자 불법 분양권 거래도 횡행하고 있다. 실제 거래가격보다 낮춰 신고하는 다운계약서를 작성하는 방식이다. 분양권은 계약 후 1년 이내에 팔 경우 양도차익의 50%를, 2년 이내에 팔 경우 40%를 양도세로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집주인들은 양도세를 덜 내기 위해 다운계약서를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정부가 최근 분양권 불법거래가 의심되는 지역을 두고 실태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비난 여론은 여전히 거세다. 분양권 불법거래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서다. 그간 체리피커들이 떼를 지어 전국을 다니면서 집값 상승을 부추겨 왔지만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거다. 또한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주택임대사업자에게 온갖 혜택을 줘 놓고는 사후 관리에 신경 쓰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에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유예, 재건축 요건 완화 등도 체리피커 양산에 기여했다.

단속 비웃는 단타족들

설령 정부가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다 해도 하루 아니면 이틀 정도만 문을 닫고 피해 있으면 그뿐이다. 단속에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불법 전매의 경우 거래 당사자(매수자와 매도자)끼리 비밀리에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불법 전매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분양권은 환수하지 않고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세금을 추징하는 데 그친다. 정부와 지자체의 철저한 관리 감독과 수사ㆍ세무당국의 적극적인 개입, 그리고 범법 행위 처벌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이 시급한 이유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 2002cta@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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