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몰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 외부 공격이라면 그나마 낫겠다. 적敵은 지척에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이 걸림돌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그룹 내 각종 사건, 볼썽사나운 형제간 갈등으로 1년여 동안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 3일 한 달여 만에 해외 출장길에서 돌아온 신 회장은 “심려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경찰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미래는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 신동빈 회장의 ‘단독경영’ 체제가 각종 악재로 흔들이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6월 25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일본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해임안 등을 안건으로 한 주총에서 주주들은 이번에도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신 회장으로선 ‘3차 방어’에 성공한 셈이지만 맘 편히 웃을 수만은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재 탓에 그룹은 물론 가문家門까지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적은 내부에 있었다

■ 끝나지 않는 경영권 분쟁 = 이번 주총에서 광윤사를 제외한 종업원 지주회, 관계사, 임원 지주회 모두 신 회장을 지지했다. 특히 이번에는 검찰이 롯데그룹을 전방위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얻은 승리라 의미가 남다르다. 각종 악재에도 주주들이 신 회장을 신임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해임안을 제안한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앞으로도 주총을 통해 같은 안건을 계속 상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분간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계속될 거란 얘기다.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해임안을 통해 신 회장을 지속적으로 괴롭힐 수 있는 배경은 ‘광윤사’다. 이 회사는 일본롯데홀딩스, 롯데스트래티직인베스트먼트(LSI)와 함께 일본롯데의 핵심계열사 중 하나다. 형제의 난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광윤사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50%+1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신 전 부회장의 지배권 안이다. 이 때문에 신 회장이 광윤사를 포섭하는 건 포기했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엔 신격호 총괄회장의 치매 치료제 복용 사실이 밝혀지면서 운신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지만 언제든 이 ‘키’로 동생을 괴롭힐 수 있다.

■ 형 이어 누나마저… = 하지만 신 회장을 괴롭게 하는 건 형뿐만이 아니다. 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도 골치다. 면세점 입점과 관련해 네이처리퍼블릭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지난 1일 검찰에 소환됐기 때문이다. 6월 예정이던 호텔롯데의 상장이 미궁 속으로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현재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 컨설팅과 매장 관리를 담당한 BNF통상 대표를 소환해 면세점 입점 특혜를 입증할 만한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1일 신영자 이사장을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아직 검찰 조사 중이지만 만약 이런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경영권 향방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

■ 꼬리 무는 비자금 의혹 = 현재 롯데그룹은 이 외에도 대대적인 비자금 의혹 수사를 받고 있다. 오너 일가의 300억원대의 비자금 조성ㆍ운용을 비롯해 계열사 간 자산 거래, 협력업체 일감 몰아주기 등 롯데그룹에 대한 전방위 검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6월 14일에는 롯데건설롯데케미칼 등 계열사 10여 곳을 포함해 모두 15곳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롯데홈쇼핑은 영업정지 제재를 받았고 롯데마트 관계자는 구속됐다. ‘롯데’ 울타리 안에서 악재가 거듭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재승인 절차 과정에서 평가항목을 고의로 누락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말부터 6개월간 프라임타임에 방송을 할 수 없게 됐다. 롯데홈쇼핑 측은 “지나친 이중처벌로 중소협력업체가 줄도산 할 우려가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롯데마트도 문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으로 2006년 당시 롯데마트 영업본부장을 지낸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이 지난 6월 24일 구속됐다. 상품부장도 불구속 기소됐다. 신 회장이 웃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상장 포기, 인수 불발

■ 사라진 성장동력 = 시끄러운 내부도 문제지만 암울한 건 미래도 그리 밝지 않다는 거다. 롯데그룹은 최근 성장 동력을 하나 둘 잃어가고 있다. 호텔롯데의 상장 철회, 액시올(Axiall) 인수 철회가 바로 그것이다. 당초 롯데그룹은 6월 말 호텔롯데를 상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면세점 입점 비리 의혹이 터지면서 일정을 연기했다. 지난 6월 13일 롯데 측은 “수사 결과에 따라 당사의 평판과 영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호텔롯데의 상장 철회 이유를 밝혔다.

신 회장은 연내 상장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비자금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연내에는 어렵지 않겠냐는 게 증권가 분석이다. 오린아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일단 연내 추진은 시도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회계 자료의 변경 가능성이 있다”면서 “만약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할 경우 3년 동안 예비심사 신청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호텔롯데는 4조~5조원으로 예상된 공모자금을 그룹 핵심사업인 면세사업과 호텔사업의 성장동력 확보에 사용한다는 계획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반反롯데정서를 수습하기 위해 일본계 지분을 줄인다는 것이 상장의 목적이었다. 신 회장으로선 호텔롯데 상장으로 광윤사의 호텔롯데 지분율을 5.5%에서 4.1%로 떨어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는 ‘일시정지’ 됐다. ‘세계 1위 면세점’을 목표로 관심을 갖고 추진하던 미국의 ‘듀티 프리 아메리카(DFA)’ 인수도 최종 불발됐다.

인수가 불발된 건 또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3일 미국의 화학기업인 액시올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금융감독원 공시를 통해 “인수 제안서를 제출했으나 성사되지 않아 계획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롯데케미칼 측이 설명한 이유는 ‘과열된 경쟁’ ‘롯데의 상황’이다. 인수 경쟁이 과열된 데다가 롯데가 직면한 국내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더 이상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거다.

이처럼 롯데그룹은 내홍을 겪으며 성장동력마저 잃었다. 검찰 조사가 한창이기 때문에 이렇다 할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현재로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빠진 셈이다. 신 회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까. 롯데와 신 회장이 기로에 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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