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 사업자의 비애

알뜰폰 사업자들이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렌털사업, 유통사업 등 영역도 다양하다. 표면적으론 긍정적인 행보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알뜰폰 수익이 신통치 않자 어쩔 수 없이 사업영역을 넓히는 것이라는 하소연이 많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알뜰폰의 ‘서러운 변신’을 취재했다.

▲ 정부는 알뜰폰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우체국 수탁판매를 실시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사진=뉴시스]

# 알뜰폰 사업자 이지모바일은 지난해 7월부터 군 장병을 대상으로 한 휴대전화 렌털 사업 ‘이지톡’을 서비스하고 있다. 전국 600개 부대에서 실시 중인 이 서비스는 영내 마트(PX)에서 휴대전화를 빌린 뒤 구매한 유심칩을 끼우면 이용할 수 있다. 군 장병들은 이 서비스로 PX나 휴게실 등 정해진 공간 내에서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지모바일은 캄보디아 홈쇼핑 ‘하나 TV’와 업무협약을 맺고 유통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 또 다른 알뜰폰 사업자 에넥스텔레콤은 올해 상반기 냉장고, 에어컨, 침대와 같은 가전・가구를 빌려주는 ‘스마트렌털’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전・가구를 렌털한 소비자는 월 단위로 대여료를 납부하고 대여기간이 끝나면 빌린 물건을 소유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홈쇼핑에서도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알뜰폰 사업자들이 틈새시장 공략에 나섰다. 군에 있는 장병들에겐 휴대전화를 빌려주거나, 구입할 때 제법 큰돈이 드는 가전・가구도 렌털한다. 생활필수품이나 화장품을 공급하는 해외유통사업에도 손을 대는 업체도 등장했다. 하지만 알뜰폰 업체의 사업 다각화는 덩치를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알뜰폰의 수익이 나지 않자 마련한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표면적으로 알뜰폰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알뜰폰 제도 도입 4년 만에 가입자 수가 이통3사의 10.5%까지 늘었다. 우리나라보다 알뜰폰 사업을 먼저 펼친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알뜰폰 점유율 10%가 되기까지 6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빠른 성과다. 하지만 알뜰폰 사업자의 내실은 겉으로 나타난 것만큼 신통치 않다. 첫째 문제는 치중된 점유율에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알뜰폰 가입자 중 55.7%는 대기업 계열 사업자에 몰려 있고, 나머지 44.3%의 가입자를 28개의 중소사업자가 나눠가지고 있다. 사업자간 편차가 극심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알뜰폰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는 사업자들을 되레 흔들고 있다. 실례로 지난 6월 9일 정부가 휴대전화 공시지원금 상한제 폐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알뜰폰 업계에서는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날벼락을 맞았다”면서 “상한제를 폐지하더라도 당장 지원금이 오르지 않겠지만 분명 알뜰폰 업계에 미치는 여파가 클 것”이라고 털어놨다. 소비자와 사업자를 모두 혼란스럽게 만든 소동은 최성준 방통위원장의 “공시지원금 상한제 폐지 계획은 없다”는 말 한마디로 일단락됐지만 이 이슈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몸집 커졌지만 실속이 없네

알뜰폰 가입자 1인당 461원(월)을 내야 하는 전파사용료 면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2011년 7월 정부는 알뜰폰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사업자들에게 3년간 전파사용료를 면제해줬다. 그 뒤에도 사업자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자 두번에 걸쳐 사용료 면제 기간을 연장해줬다. 올 9월 면제기간 종료를 앞두고 알뜰폰 사업자들은 전파사용료 문제로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정부 안팎에서 ‘전파사용료 면제기간을 연장하지 않는다’ ‘절반만 내야 한다’는 등의 얘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알뜰폰 가입자가 628만명(4월 말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연간 전파사용료는 347억원에 이른다. 전파사용료에 따라 마케팅이나 기타 사업에 예산이 늘거나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알뜰폰 사업자가 마냥 전파사용료를 면제해달라고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아니다.

한 알뜰폰 관계자는 “결국 전파사용료 면제 기간이 1년 더 연장됐지만, 대부분 통신 관련 정책이 갈팡질팡한다”면서 “통신사 정책에 큰 그림이 있어야 사업자들이 계획을 미루거나 재검토하는 일을 줄이고 알뜰폰 사업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심각한 건 정부 정책이 출혈경쟁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알뜰폰 활성화를 위해 그간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냈다. 그중 하나인 우체국 수탁판매는 알뜰폰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일부 편의점에서도 알뜰폰을 판매하고 있지만 알뜰폰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으로 별다른 실적을 남기기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체국은 판매창구도 따로 마련해 소비자들에게 알뜰폰에 대한 신뢰를 심어준 계기가 됐다.

하지만 우체국 수탁판매가 알뜰폰 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만은 아니다. 우체국에 수탁판매를 할 수 있는 알뜰폰 업체는 10곳뿐. 대기업 자회사는 들어갈 수 없고 나머지 28개 사업자들이 신청서를 제출하면 우체국이 점수를 매겨 추려낸다. 신청서를 평가해 100점 만점에 40점 이상을 받은 사업자 중 상위 10개 사업자가 우체국에 입점한다. 이 신청서에는 각 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제공할 요금제를 설명하는 항목이 있다.

알뜰폰 자생론 vs 시기상조론

배점은 무려 25점으로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요금제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업체는 우체국 판매가 불가능하다는 거다. 문제는 요금제의 확실한 룰이 없어 업체간 출혈경쟁이 일어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알뜰폰 사업자가 일정한 수준 이하로는 요금을 내릴 수 없게 만들어야 출혈경쟁이 사라진다”면서 “이런 식으로는 알뜰폰 사업 자체가 지속되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정부의 알뜰폰 산업을 키우기 위한 노력이 충분했다는 평가도 있다. 오프라인으로는 우체국 판매, 온라인으로는 알뜰폰 허브를 구축해 다양한 판로를 개척한 것은 성과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언제까지 정부에만 기대서 알뜰폰 사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라면서 “사업자가 자생할 수 있도록 힘을 키우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뜰폰 시장에서 ‘부익부빈익빈’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 ‘출혈경쟁’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건 사실. 알뜰폰 사업자의 자생론을 주장하기에 이른 감도 있다. 알뜰폰은 국민의 통신비 인하를 위해 만들어졌다. 알뜰폰 사업자가 바로 서면, 그 혜택은 국민에게 돌아간다. 알뜰폰 업계의 민낯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다은 더스쿠프 기자 eundak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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