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기 경제 어땠기에…

▲ 지금의 경제 위기가 1930년대와 닮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미국이 400% 관세를 붙이자 유럽 경제가 흔들렸다. 유럽 각국도 앉아서 당하지 않았다. 관세 보복으로 미국을 압박했다. 미국과 유럽의 ‘관세전쟁’은 결과적으로 세계시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의  중심엔 ‘보호무역’이 있었다. 반세계화 물결이 부는 2016년 세계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있다.

탈세계화의 바람이 거세다. 세계경제가 침체일로를 걷자 세계화의 흐름에 반대하는 극우세력이 득세한 데 따른 결과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선 국수주의자들이 전에 없던 지지를 받고 있다. 국수주의자들이 고립화, 탈세계화를 이끌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흐름에 경제전문가들은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낸다. 1930년대 경제 대공황기期와 지금 상황이 무척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의 “1930년대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귓등으로 흘려들어선 안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의 기록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해서는 참혹한 결과를 맞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경제 무너뜨린 블랙데이

그렇다면 1930년대 세계 경제는 어땠기에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일까. 시계추를 1929년으로 돌려보자. 1929년 10월 24일과 29일 미국의 주식시장은 두차례 붕괴했다. ‘검은 목요일’ 또는 ‘검은 화요일’이라고 부르는데, 통상적으로 이때를 세계 대공황이 발발한 시점으로 본다. 1920년대 호황을 누리던 미국이 갑작스럽게 무너진 이유는 소득불평등에 있다. 경기 호황과 설비 자동화로 가파르게 늘어난 공급량을 수요가 떠받치지 못했는데, 그 중심에 빈부격차가 있었다는 얘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과열된 주식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용한 ‘고금리 긴축정책’도 화를 불렀다. 이 정책으로 거품이 빠진 주식시장이 붕괴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이런 긴축재정은 1930년 10월~1933년 3월 세차례의 은행공황까지 유발했다. 당시 미국 경제는 통화량이 3분의 1가량 줄어들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미국에서 출발한 세계대공황은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1930년 6월 스무트 미 상원 의원과 홀리 하원 의원이 입안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이 통과된 것이 시작이다. 농산품을 보호하겠다던 관세법의 적용 범위가 공산품까지 확대되면서 미국이 수입하는 2만여종의 물품에 400%의 관세가 붙었다. 이에 따라 수출액이 줄어든 유럽국가들은 침체의 늪에 빠졌고, 세계시장은 더 위축됐다. 특히 유럽국 역시 ‘보복관세’를 단행함으로써 보호무역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국수주의적 정책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지표를 악화시켰다. 미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1929년 미국의 국제무역 수입 규모는 44억 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보호무역을 펼친 결과 1933년엔 66%가량 급감한 15억 달러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감소한 건 수입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기간 수출량은 54억 달러에서 21억 달러로 61% 줄었다.

미국의 대對유럽 무역만 따져보면, 수출량은 1929년 23억4100만 달러에서 1932년 7억8400만 달러로, 수입량은 같은 기간 13억3400만 달러에서 3억9000만 달러로 크게 줄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통과되기 직전인 1930년 실업률은 8.9%수준이었다. 하지만 관세법이 시행되자 실업률은 치솟기 시작해 1933년 24.9%에 육박했다. 결과적으로 이 기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반토막이 났고, 유럽 각국의 경제 역시 파탄 지경에 빠졌다.

특히 세계대공황의 여파를 가장 크게 맞은 독일 경제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1933년 독일의 산업생산 규모가 대공황 직전인 1928년 대비 34%나 줄었기 때문이다. 그해 실업률은 30%에 달했다. 그렇다면 1930년대 경제대공황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첫째 원동력은 정부의 개입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뉴딜 정책, 독일 나치의 경제정책처럼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면서 수요를 불러일으킨 게 효과를 봤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론 부정적인 효과도 낳았다. 

정부의 힘이냐 국제 공조냐

일례로 지나친 국수주의에 물들었던 독일은 민간부문의 투자가 줄어 산업 불균형 현상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경제대공황을 극복한 건 정부의 힘이 아니라 국제 공조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 과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등 숱하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미국과 유럽 각국이 손을 다시 맞잡은 것이 돌파구가 됐다.

이헌대 경기대(경제학) 교수는 2004년 작성한 논문 ‘대공황 회복기 독일의 자본축적’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부 개입에 의한 민간부문 투자저해와 시장 교란이 없었다면 독일 경제는 훨씬 더 건전한 성장을 달성했을 것이다. 국가의 통제된 경제정책을 통한 자본축적과정이 경제구조를 크게 왜곡시켰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무역, 통화정책의 긴밀한 협력이 강구되던 때에 나치의 경제정책이 다다른 곳은 결국 막다른 골목이었다.” 1930년대 경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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