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화한 추경 편성

▲ 박근혜 정부는 출범 4년 만에 3번이나 추경 카드를 꺼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사진=뉴시스]
또 추경(추가경정예산)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2014년만 빼고 계속 추경이다. 2014년마저 추경은 아니지만 추경보다 규모가 훨씬 큰 46조원 규모의 재정보강을 실시했다. 사실상 4년 연속 추경을 한 셈이니 상시 추경이요, 연례행사다.

추경이 뭔가? 1년 단위로 마련해 집행하는 국가예산에 문제가 생겨 정부가 예산을 추가 변경하는 것이다. 세입이 예상보다 크게 줄거나 예기치 못한 지출 요인이 생겼을 때 편성한다. 어쨌든 나라살림이 계획대로 안 된 것이니 정부는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

정부는 나름 이유를 댄다. 2013년에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고 대규모 세수결손을 메운다는 명목으로, 지난해는 메르스 사태와 가뭄에 대응한다며 추경을 편성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대규모 재정보강을 했다. 올해 추경의 명분은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따른 경기ㆍ고용 침체 극복이다.

메르스나 브렉시트 등 예기치 못한 사태도 있지만, 이런 경우를 예상해 예산을 편성할 때 확보해두는 것이 예비비다. 전체 예산의 1%에 해당하는 비상금인 예비비로 부족해 추경 편성에 나서는 일, 그것도 박근혜 정부 출범 4년 만에 3번이나 추경 카드를 꺼내든 것은 정부정책과 나라살림의 실패를 자인한 꼴이다.

국민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며 추경을 편성했으면 경제성장과 고용증대로 성과를 내야 할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2014년 한해만 3%대 성장률로 반짝했을 뿐 나머지 3년은 2%대 성장을 맴돌고 있다. 4년 내내 추경과 재정보강으로 나라살림에 땜질을 하는데도 성장은 정체하고 고용도 악화일로다.

이는 정부의 경기예측과 정책운영 능력, 세계경제 흐름을 읽는 눈에 고장이 났다는 방증이다. 선진국들이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4차 산업혁명으로 내달리는 사이 우리는 재건축 및 담보대출 규제 완화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철폐로 부동산 경기를 자극하는 데 매달렸다. 지난 6월 말 타계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15년 전 한국에 던진 “산업화 시대 경제발전 모델에 안주하지 말고 혁신적인 지식기반 경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라”는 충고는 무시당했다.

게다가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더니만 한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가 경기가 침체돼 있다며 추경이 필요하다고 한다. 상반기로 예산을 당겨쓰고선 하반기에 쓸 돈이 부족하다며 재정보강을 들먹인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2013년)와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2014년), 브렉시트(2016년)와 같은 해외변수가 생기면 후다닥 추경을 들먹인다.

올해도 민간 쪽에서 추경 필요성을 거론하는데도 손사래를 치다가 브렉시트가 현실화하자 급선회했다. 추경을 편성하면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자본확충분을 반영해야 하고, 국회심의 과정에서 책임을 추궁당할 것을 피하자는 계산을 했으리라. 결국 두 국책은행 자본확충금 10조원은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하고, 추경은 하반기에 예상보다 더 걷힐지 불확실한 세금으로 메운다는 양동작전을 폈다.

두달 전까지 추경이 불필요하다던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지난 6월 28일 추경 방침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선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국회에서 빨리 처리해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국회의 추경안 ‘통과 지연’보다 정부의 ‘제출 지연’이 걱정스럽다. 유 부총리는 이튿날 국회 업무보고에서 “일자리와 양극화 해소 등을 포함해 추경 수요를 발굴하겠다”며 7월 중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추경은 시기와 규모 못지않게 용처가 중요하다. 각 부처가 서랍 속에 넣어둔 숙원사업과 아이디어 처리용으로 집행해선 안 된다. 당면 과제인 청년실업 해소와 주거안정, 누리과정 정상화는 물론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인 양극화와 저출산ㆍ고령화 해소에 도움이 되는 정책과제를 적극 개발해야 할 것이다. 국회심의 과정에서 지역구 의원들의 민원 해소용 토건사업이 배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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