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중장년 재취업자

▲ 중장년층 은퇴자가 몰리고 있지만 재취업 시장의 문은 좁다.[사진=뉴시스]
2015년 구조조정당한 박씨. 얼마 전 재취업에 성공했다. 평생 사무직을 봤지만 현장도 감수하기로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얼마 전 명예퇴직한 이씨. 재취업을 원하지만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현장직은 내심 불안하고, 막상 간다고 하면 ‘에이! 선생님’이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중장년층 재취업의 문, 참 좁다.

건설사 영업팀에서 근무하던 박성호(가명ㆍ47)씨는 요즘 헤드헌터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 수익을 올리라는 회사의 압박은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배가 상사로 오는 순간 좁아진 자신의 입지를 확인했다. “알아서 나가라는 신호였죠.” 그 길로 박씨는 사표를 던졌다. ‘여기 아니어도 먹고살 데는 많다’는 당찬 각오로 말이다.

하지만 박씨는 이내 깨달았다. 밖은 더 전쟁터 같다는 것을…. 헤드헌터 시장에 나가 유통업체 마케팅팀에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자신을 영입한 임원이 구조조정됐다. 졸지에 갈 곳을 잃었다. 박씨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헤드헌터 시장에 나왔다. 그는 요즘 자신이 어디로 가게 될지,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 다리를 뻗고 잘 수가 없다.

“연령이 맞지 않는다.” “원하는 기업의 채용공고가 없다.” “일자리가 적다.”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이하 협력센터)가 40~60대 중장년층 556명에게 ‘취업이 안 되는 이유’를 물어본 결과, 이런 유형의 대답이 89.4%를 차지했다. 일자리 적합성도 떨어졌다. 협력센터에 따르면 재취업에 성공한 중장년 10명 중 4명은 평생 해온 업무와 무관한 분야로 전직轉職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동일 분야에 재취업하지 못한 상당수는 현장직으로 옮긴다.[사진=뉴시스]
경력이 있는 구직자의 경우 75.2%가 사무직으로 재취업을 했다. 하지만 그중 건설사무직의 절반(50.0%)은 이전 업무와 상관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동일 분야에 재취업하지 못한 이들 중 상당수는 단순노무직 등 현장직으로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50대가 48.0%로 가장 많았다. 배명한 협력센터 소장은 “50대는 단순노무직에도 기회가 많지만 60대는 여기에서마저 고령자 기피 풍조로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도 “중장년층의 재취업 시장은 고용의 질은 낮은 편”이라고 진단한다. 주된 일자리에서 일찍 퇴직하고 저임금 일자리 위주로 재취업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재취업한 일자리의 경우 고용의 질이 낮거나 경력을 제대로 살리기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임시직ㆍ일용직, 생계형 자영업, 단순노무직종으로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재취업뿐만 아니라 창업과 통틀어 봐도 그렇다. 이는 서울시 조사결과에서 엿볼 수 있다. 서울시가 50~64세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퇴직 후 재취업하거나 창업한 직종은 서비스판매직이 가장 많았다. 남성은 46.5%, 여성은 71.7%를 차지했다. 단순노무(남 21.7%ㆍ여 8.3%), 기능직(남 19.9%ㆍ여 15%)이 그 뒤를 이었다. 대부분의 중장년층은 퇴직 후에도 재취업을 원하거나 사회공헌ㆍ프리랜서 등의 사회활동을 원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게다가 정부가 운영하는 워크넷 등 구직서비스는 경력과 무관한 단순노무직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고 구직자들은 토로한다.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임금사무직

노후소득 보장이 미흡한 것도 문제다. 퇴직 전과 퇴직 후의 임금 격차가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기업에서 20년 이상 장기근속 했을 경우 평균 593만원의 월임금을 받는다. 하지만 20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재취업을 하면 184만원으로 뚝 떨어진다. 윤철민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과 사무관은 “우리나라 기업들은 연공서열제라 연차에 따라 임금이 갈수록 높아진다”면서 “이런 이유로 장기근속자와 재취업자의 임금을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184만원은 퇴직자들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월 생계비인 253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른 퇴직, 만혼 등으로 은퇴 이후에도 돈 쓸 일이 많은 이들에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여력이 주어지지 않는 셈이다. 은퇴빈곤ㆍ노인빈곤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이유다.

그렇다면 해외의 퇴직자 고용 상황은 어떨까.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은 기업들이 정년을 늘리거나 정년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고령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식품제조업체인 ‘운젠키노코혼포’는 임금 체제를 개편했다. 61세 후 월급제에서 일급제로 전환되더라도 일급이 정년 전 월급 수준과 동일하도록 했다.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독일은 ‘평등대우법’ ‘50+이니셔티브(Initiative 50plus)’으로 퇴직자의 고용을 보장한다. 평등대우법은 연령차별은 물론 인종ㆍ민족ㆍ성ㆍ장애ㆍ성정체성 등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특히 고용과 근로에서 연령을 포함한 차별을 강력하게 금지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50+이니셔티브’는 메르켈 정부가 고령의 장기실업자들을 노동시장에 편입하기 위해 추진한 정책이다. 자칫 고용시장에서 소외되기 쉬운 연령층의 차별 없는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미루다 보면 병은 깊어진다

반면 우리나라는 빠르게 고용시장이 변화하고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정부나 민간 차원의 대책이 미흡한 상황이다. 고용제도의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는 “퇴직 후의 고용문제는 단순히 고용정책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면서 “복지와 보건문제까지 함께 다뤄져야 하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책 하나를 두고 따로따로 고민할 게 아니라 관련 부처들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더욱 세밀한 정책망이 구축돼야 한다는 거다. “오늘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자꾸 미루다보면 점점 병이 깊어져 언제 돌연 사망할지 모르는 질병과도 같은 문제다.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접근해야 한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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