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명량❹

▲ 일본 수군의 최고 엘리트 3인은 조선 수군 엘리트 이순신을 뚫지 못하고 퇴각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명량’을 보노라면 어쩔 수 없이 영웅전을 읽는 느낌이다. 그것이 로마의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든 요즘의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의 성공신화든 ‘영웅전’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20대 80의 법칙’으로 유명한 ‘파레토의 법칙(Pareto’s Law)’이 떠오른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는 ‘모든 개미는 근면한 일꾼’이라는 이솝우화나 디즈니 만화의 오래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그가 관찰한 개미들은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20%의 개미만 뼈 빠지게 일하고 나머지 80%는 베짱이 못지않다. 그래도 개미사회는 유지된다. 집단 전체의 성과는 소수의 요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파레토의 법칙은 ‘엘리트 이론’의 정당성을 제공한다.

영화 ‘명량’에서 3명의 일본 수군 최고의 엘리트 장수 도도 다카도라(김명곤), 와키자카 야스하루(조진웅), 그리고 구루지마 미치후사(류승룡)가 조선 수군의 최고 엘리트 이순신과 부딪친다. 요즘 웬만한 한국영화에도 썩 괜찮은 일본배우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마당에 일본 장수 배역에 굳이 한국배우들을 기용한 감독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물론 이들의 티켓타워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다른 영화도 아닌 ‘명량’이라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일본 통일전쟁 과정에서 전투력을 인정받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발한 3명의 ‘최고 엘리트’는 대륙으로 가는 길을 막아선 이순신이라는 해벽을 뚫으려 기를 쓰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다. 대장선의 ‘도도 다카도라’는 갑판에 쓰러진 ‘대도무문大道無門’의 깃발을 밟고 퇴각명령을 내린다. 명나라로 가는 큰길에 이순신이라는 도무지 열리지 않는 문이 있었던 거다.

▲ 영웅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민초들을 지워버리는 역사는 불온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미 한산도 해전에서 이순신에게 대패했던 트라우마를 간직한 와키자카는 신중모드로 일관하다 미련 없이 퇴각한다. 해적에서 특채된 구루지마 미치후사는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해적답게 이순신의 배에 뛰어들었다가 목이 잘려 내걸리는 참변을 당한다.

지금도 조선왕조 500년 사직을 상징하는 경복궁과 광화문, 세종대왕의 등 뒤로 임진왜란 34만 일본 대군을 홀로 막아선 ‘조선의 1%’ 이순신 장군이 서 있다. ‘소수가 대세를 결정한다’는 파레토 법칙의 결정판이다. 과연 실제로도 그랬을까. 민초民草들은 영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울돌목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옹기종기 모여서 한일전 축구를 응원하듯 손에 땀을 쥐고 관전했을까. 조선군의 반격에 함성을 지르고 역전 결승골을 작렬한 이순신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관중에 불과했을까.

‘엘리트 사관史觀’이나 ‘영웅사관’에서 절대 다수의 민초는 단순한 사역꾼이거나 관객으로 전락한다. 아예 투명인간이 되기도 한다. 이순신은 분명 영웅이었지만, 영웅 이순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민초를 지워버리는 역사는 불온하다. 소수의 엘리트가 세상을 이끌어가고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파레토의 법칙’에 대한 맹신과 만연은 왜곡된 엘리트 지상주의로 이어진다.
 
전체적인 성과의 대부분이 몇개의 소수 요소(혹은 엘리트)에 의존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은 웹 2.0 시대를 맞아 퇴장하고, 그 자리를 ‘하찮은’ 다수가 전체를 주도하는 ‘롱테일(long tail) 법칙’이 대체하고 있다. 미국 월가의 탐욕스러운 금융자본가를 향한 분노, 미국 대선에서 샌더스와 트럼프의 돌풍, 최근 브렉시트를 통해 표출된 소수 엘리트집단에 편중된 부와 기회에 대한 영국인의 분노 등이 이를 보여준다. 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롱테일(long tail)’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소수 엘리트의 지배’를 의미하는 파레토의 법칙,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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