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21

이순신은 지금이야말로 소서행장 등 왜군을 물리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다. 물때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린은 요지부동이었다. 순신이 수차례 “출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듣지 않았다. 유정을 통해 소서행장의 뇌물을 받은 탓이었다. 어쩔 수 없이 출전을 단행하였지만 진린은 또다시 순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진린은 이순신의 조언을 듣고 함대를 장도로 옮겨 왜교에서 나오는 해구를 봉쇄하고 조수가 살기를 기다렸다. 장도는 왜교를 출입하는 해구에 가로 놓여 있는 섬이었다. 이 섬을 지나지 아니하고는 왜교를 나올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소서행장은 이 섬에 성을 쌓고 인근 각 읍의 돈과 곡식을 수납하여 창고에 쌓아두고 수비대를 두었던 것이었다.

9월 30일과 10월 1ㆍ2일 사흘간은 물때가 좋아서 왜교의 소서행장, 종의지, 모리민부 등의 함대를 칠 수 있는 절호의 시기였다. 이순신은 진린에게 총공격하기를 청하였으나 진린은 유정이 퇴각한 것을 보고 겁이 생겼는지 “수군만으로 공격하는 것이 이롭지 못하다”면서 거부하였다. 

이러는 동안에 조수의 좋은 시기는 서서히 사라졌다. 이순신은 심히 초조하였다. 그래서 진린에게 따졌다. “지금부터 수일 동안은 물이 깊은 때입니다. 거북선과 기타 대맹선으로 적선이 늘어선 정박처를 습격할 수 있습니다. 만일 앉아서 이 기회를 놓친다면 또다시 좋은 물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 되면 적은 사천과 남해 등지에 있는 적을 청원할 것이니, 그때는 우리 형세가 달라져 앞뒤로 적을 맞아 진퇴유곡이 될 것이오.”

진린은 웬일인지 난색을 띠며 결국 불청하였다. 순신 역시 뜻을 접지 않고 진린에게 나아가 싸우기를 말하였지만 진린은 그때마다 유정이 퇴군한 것을 핑계 삼아 불청하였다. 그렇다고 이순신 장군에게 혼자서 총공격을 단행할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진린의 승낙이 없이는 결행할 수 없었다. 조선 국왕이 삼도수군을 절제하는 권한을 진도독에게 부여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순신은 어쩔 수 없이 ‘정찰한다’ ‘척후한다’는 명분으로 적선의 정박처를 공격하고 있었다.

▲ 적장 소서행장은 유정에게 뇌물을 써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터달라고 애원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런 전투 중에 사도첨사 황세득黃世得이 맹렬히 독전하다가 총알을 맞고 전사하였다. 적에게 대손해를 입히고 돌아온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황세득은 순신의 처종형이었다.

좋은 물때 놓친 진린

순신은 황세득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황세득이 용감하게 전사하였으니 죽어도 영광이라고 하여 제장을 격려한다. 동시에 자기의 평소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 말가죽으로 시신을 싸겠다.”

전부장 해남현감 유형은 나이로 말하면 금년 33세로, 이순신의 장자인 이회와 연배간이었다. 회는 32세였다. 순신은 유형을 친자식처럼 여겼고, 유형은 순신을 부친과 스승으로 생각하였다.

이날 황세득의 상차喪次(상제들이 있는 장소)에서 유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고로 국가의 대장이 된 자가 공을 탐내는 마음이 있다면 신세를 보전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새를 잡으면 활이 소용없어지고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삶는 것이니 내 소원은 적이 물러가는 날에 국사에 죽어 말가죽에 시신을 싸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말은 들은 유형은 눈물을 흘렸다.

어찌 됐든 진린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유정의 소개로 소서행장의 뇌물을 받은 탓이었다. 그 뒤로부터는 이순신을 이전처럼 대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진린에게 총공격하기를 재삼 독촉하였다. “금일도 또 허송하면 조수가 얕아지오. 그리되면 또다시 반삭을 기다리지 아니하면 싸울 기회가 없소. 반삭을 기다리는 동안에 적은 반드시 사천, 부산, 거제의 적을 청원해 올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앞뒤로 적의 협공을 당하여 곤경에 빠질 것이오. 오늘은 초삼일 열물이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소.”

진린은 답했다. “유정의 육군과 약속이 아니 되었으니 주사로만 싸울 수 없소.” 이순신은 다시 정색하면서 “만일에 오늘을 놓쳐버리면 대명의 주사나 조선의 주사나 다 적에게 전멸이 되어 한척도 남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오!”라고 경고했다.
 

진린은 순신의 지감知鑑(사람 또는 일의 장래를 파악하는 능력)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순신의 말을 들을 때 두려웠고, 마지못해 왜교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땐 물때가 좋지 않았다. 싸움이 시작돼 이순신의 함대는 선봉에 섰다. 얼마나 격렬하게 싸웠던지 적선 40여척을 깨뜨리고 왜교의 적진에도 원거리 대포를 쏘아대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그런데 진린의 함대는 웬일인지 싸울 뜻이 없어 관망만 하고 뒤로만 슬슬 돌다가 조선군이 승전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앞으로 내달았다. 그러나 이때에는 조수가 물러나오고 있었다.

순신의 충고 듣지 않은 진린

전라도 바다의 조수는 급히 빠지기로 유명해서 주의하지 아니하면 으레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이순신은 진린에게 소선을 보내어 “조수가 나갈 때가 되었으니 군을 거두라”고 경계를 주었다. 그래도 진린은 불타오르는 듯한 탐공심에서 설마설마라면서 순신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과연 순신의 말대로 명나라 전선 중에 호선號船이란 배 20척과 사선沙船이란 배 9척이 풀에 올라앉아 버렸다. 이것을 보고 소서행장, 종의지의 군사는 순신에게 패한 분풀이로 작은 배로 뛰어 올라가 명군을 죽여 버리고 배에는 불을 놓았다. 이순신은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소전선 7척을 보내어 구원하였으나 물이 얕아져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안골포만호 우수禹壽가 탄환에 맞았다. 중상은 아니었지만 이 광경을 보고 진린은 자기의 군사는 실패하고 순신의 군사는 승리한 것 같아 분노하였지만 그렇다고 감히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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