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와 세계화의 모순

▲ 세계화는 경제성장을 촉진하지만 경제적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유로존 재정위기에 따른 유럽연합의 불안정성 증가, 이민자로 인한 영국 국민의 일자리 감소. 브렉시트(Brexit)를 이끈 직간접적인 요인들이다. 모두 경제적 불균형과 맞닿아 있다. ‘브렉시트는 경제적 불균형을 야기하는 세계화의 모순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라는 분석이 잇따르는 이유다. 세계화의 모순, 이젠 짚고 넘어갈 때도 됐다.

“세계화의 황금기는 존재한 적이 없다. 세계화는 부유한 나라의 빈곤층을 더욱 가난하게 하고, 가난한 나라의 부유층을 더 부유하게 하는 정책일 뿐이다. 자유무역은 신화요, 세계화는 허상이다.” 2009년 말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로존 재정위기의 여파가 유럽연합(EU)을 휩쓸던 2011년 4월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 「세계화의 종말(La demondialisationㆍ탈세계화)」의 저자 자크 사피르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 교수의 말이다.

그는 “EU의 확대는 서유럽 국민들은 물론 동유럽 국민에게도 유익하지 않다”면서 “EU 확대는 대기업에 막대한 이윤을 보장해줬지만, 산업 전체로 볼 때 EU회원국의 사회적 환경을 하향 평준화해 놓았다”고 꼬집었다. 신자유주의를 등에 업은 세계화가 삶을 풍족하게 만들기는커녕 사회적 갈등만 유발할 것이라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를 비판하는 정치경제학자들이 주로 이런 주장을 폈다.

최근 발생한 브렉시트(Brexit)는 세계화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본보기로 충분하다. PIIGS(포르투갈ㆍ아일랜드ㆍ이탈리아ㆍ그리스ㆍ스페인)로 불리는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에서 시작된 EU의 불안정성 증가, EU에 내는 분담금 대비 지위를 낮은 게 아니냐는 영국 국민들의 불만, 이민자들의 영국 유입으로 인한 영국 국민의 일자리 감소 등이 브렉시트의 원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균형이 브렉시트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EU 회원국의 경제력 불균형이 심해졌다. 독일은 강소기업과 제조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반면 영국은 EU에 가입돼 있지만 단일통화인 파운드화를 고집했다. 가치가 높은 파운드화를 이용한 금융서비스업이 영국의 핵심산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운드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주요 경제 동력이 힘을 잃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EU 회원국 중 독일과 프랑스에 이어 3번째로 높은 분담금 순공여국(2014년 기준)이지만 산업동력은 약해지고, EU정책에 따라 이주민은 많아지는 상황이 기분 좋았을 리 없다. 이런 심리는 브렉시트 투표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브렉시트를 찬성한 이들은 대부분 노년층ㆍ저학력층이었으며, 영국에서도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인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 주민들이었다. 반면 젊은층ㆍ고학력층, 비교적 풍요로운 스코틀랜드과 북아일랜드는 브렉시트를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하원의원 650명 가운데 500명은 EU 잔류를 선택했다. 영국의 저소득층인 잉글랜드ㆍ웨일스 지역민은 EU 합류가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브렉시트 핵심은 경제력 불균형

일부 전문가들이 영국의 브렉시트를 두고 “14세기에 일어난 ‘소작농의 반란’이 재연된 것”이라는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소작농의 반란은 과거 영국에서 지방 농민들이 고율의 세금과 흑사병을 견디지 못해 난亂을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결국 브렉시트의 핵심은 경제력 불균형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이는 세계화에서 늘 문제로 지적돼 온 이슈다.

김의동 경상대(국제통상학) 교수는 “세계화에서 힘의 논리에 따라 자본주의의 무역조건은 차이가 나게 마련이고, 이는 세계화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늘 지적돼 왔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경쟁력을 높이려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거대한 시장이 필요하다. EU도 단일화된 시장을 만드는 데서 출발했다. 세계화를 한 거다. 하지만 세계화는 경제적 불균형을 동반한다. 정치경제학자들이 늘 지적해 왔던 거다. 게다가 EU는 통화를 단일화하기는 했지만 재정이 통합되지 않았다. 결국 민족국가와 세계화의 모순된 상황이 혼재했다는 얘기다. 개별 국가의 사회와 문화, 제도 등이 고려대상에서 배제되기 쉽다. 결국 EU는 완전히 단일화된 공동체를 형성하지 않는 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핵심은 이런 불균형이 지속될 때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런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을 때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전체주의가 나타났다”고 꼬집었다. 세계화의 모순으로 더 위험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는 “유럽에 속한 국가들에서도 최근 극우세력들이 표를 얻고, 현재 미국에서 트럼프가 선동정치로 인기를 얻는 것도 경제적 불균형과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타적 정책으로 세계화 모순 없애야

해법은 없을까. 자본주의의 끝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세계화의 모순을 해결할 방법도 찾기 쉽지 않다. 다만 지난 6월 28일 미국 민주당 경선후보인 버니 샌더슨 상원의원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방향성은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미국에서 새로 발생하는 수입의 58%는 상위 1%의 주머니로 몰리고 있다. 월가와 억만장자들은 선거마저 매수하고 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시급 8~9달러도 못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어린이 중 58%는 궁핍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었다. 지금 세계경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경제 엘리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든 경제모델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브렉시트처럼 세계경제의 흐름을 거부하는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이제 진정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자유무역(free trade)을 거부하고 공정무역(fair trade)을 추구해야 한다. 미국인들은 시간당 몇 페니만 받고 일하는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들과 경쟁해서는 안 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무산시키고, 가난한 나라들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모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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