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펫네임에 숨은 마케팅

▲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한 전략으로 펫네임 마케팅이 열풍이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유례없는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기업은 무너지고 소상공인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이 와중에도 신제품들은 쏟아지는데 문제는 창고에 쌓이는 것도 그만큼 많다는 거다. 얼어버린 소비심리, 그것을 녹이는 게 관건이다. ‘펫네임 마케팅’이 붐을 일으키는 이유다. 쉬운 이름으로 소비자의 뇌를 공략하고 있다는 거다.

대학 동기인 김미영ㆍ이지선ㆍ김유미씨는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셋은 모일 때마다 통과의례처럼 최근 사용하는 화장품 정보를 나눈다. 먼저 지선씨가 “해외여행을 간 친구에게 ‘갈색병’과 ‘구슬 파우더’를 부탁했다”면서 말을 꺼냈다. 지선씨는 수년째 갈색병과 구슬파우더를 사용하는 충성고객이다. 실속파인 미영씨는 “여름이라 ‘짐승젤’을 한통 더 샀다”고 했다. 그때 지선씨가 파우치에서 화장 퍼프를 꺼냈다. 지선씨와 미영씨는 “이게 그 유명한 똥퍼프냐”며 한번씩 얼굴에 두드려봤다.

이날 셋이 주고받은 대화 속에 등장한 ‘갈색병’ ‘구슬 파우더’ ‘짐승젤’ ‘똥퍼프’는 실제 브랜드가 아니다. 기업 또는 소비자들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펫네임(Pet nameㆍ애칭)이다. 이들은 각각 에스티로더의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리커버리 콤플렉스’, 겔랑의 ‘메테오리트 라이트 리빌링 펄 오브 파우더’, 네이처 리퍼블릭의 ‘알로에베라 수딩젤’, 다이소의 ‘조롱박형 화장퍼프’라는 길고 어려운 본래의 이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길고 어려운 이름 대신 쉽고 간편한 펫네임을 사용한다. 그것이 이제는 마치 원래 있었던 브랜드처럼 통용되고 있는 거다. 펫네임이 붙게 된 이유도 다분히 직관적이다. 갈색병은 말 그대로 갈색병에 들어 있어서, 구슬 파우더는 구슬 모양이라서다.

쉽고 간편한, 하지만 한번 들으면 뇌리에 박히는 펫네임이 산업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소비재는 물론 최근에는 부동산 시장에서도 펫네임 마케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 이면에는 길고 긴 불황이 있다.

▲ 재고 증가는 기업의 생산 활동을 위축시킨다.[사진=뉴시스]
현대경제연구원은 “대규모의 경제적 충격이 없는데도 경기 회복이 장기간 지연되고 있다”면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황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라고 분석했다. 현재 불황의 가장 큰 특징은 수요가 부족해 재고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제품은 만들었는데 소비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창고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이고 있다는 얘기다.

재고 증가는 가동률 등 기업의 생산 활동을 위축시킨다. 이런 부진은 가계 소득의 감소, 시장 수요의 위축, 다시 실적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게다가 지금은 제품력ㆍ품질ㆍ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도 아니다. 이는 기본 중의 기본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시장에서 어떻게 소비자를 끌어들이느냐, 시장에서 어떻게 튀느냐의 전쟁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펫네임 마케팅’이다.

소비자의 뇌를 공략하라

펫네임이 붙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다. 기업이 전략적으로 펫네임을 붙이는 경우와 소비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경우다. 물론 후자보다는 전자가 훨씬 많다. 기업이 ‘펫네임 마케팅’ ‘닉네임 마케팅’ ‘애칭 마케팅’ 등의 전략으로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거다.

전략적으로 펫네임을 붙이는 경우는 그 과정과 방법이 각양각색이다. 제과업체인 오리온은 올초 신제품을 출시하며 펫네임 마케팅을 전개했다. 지난 1월 ‘오! 감자 토마토케찹맛’을 출시하며 소비자들이 쉽게 제품명을 기억할 수 있도록 펫네임을 붙인 거다. 긴 제품명을 함축적으로 줄인 ‘오토케’가 바로 그것이다. 2월에는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스 홈경기에서 ‘오토케 데이’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오토케’는 단기 이벤트로 끝났지만 오리온은 앞으로도 더욱 쉽고 재미있게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마케팅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 오리온 관계자는 “펫네임은 제품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좋을 뿐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해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도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부동산 시장에서도 펫네임이 열풍이다. 과거에는 브랜드에 지역 이름을 활용하는 예가 많았으나 얼마 전부턴 기존에 있던 브랜드에 펫네임을 붙여 프리미엄 전략을 더하는 방식이다. 대우건설은 ‘푸르지오’ 브랜드에 정상ㆍ정점을 의미하는 ‘써밋(Summit)’이라는 펫네임을 붙여 ‘푸르지오 써밋’을, GS건설은 ‘자이’에 ‘아트(Art)’를 붙여 ‘아트 자이’ 브랜드를 내놨다. 아파트 이름이 점점 길어지고 외래어를 남발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펫네임 마케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전략적 펫네임만큼 널리 통용되지는 않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펫네임도 있다. 대개는 광고모델 이름에 제품을 붙여 부르거나 사용 후기를 통해 반복돼 만들어지는 경우다. 큰 인기를 끌었던 ‘하유미팩(셀더마 하이드로겔 마스크팩)’ ‘견미리 팩트(에이지투웨니스 에센스 커버팩트)’ ‘송혜교 립스틱(라네즈 투톤 립 바 쥬시팝)’ 등이 스타의 이름이 펫네임처럼 붙은 경우다. 반면 ‘중독팬츠(블루랭스 슬림핏 와이드 팬츠)’  ‘또사요쿠션(베리떼 쿠션파운데이션)’은 각각 한번 입으면 다른 바지를 입을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하고, 재구매율이 높다는 이유로 붙은 펫네임이다.

그렇다면 이런 펫네임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 걸까. GS홈쇼핑의 ‘1초 성형네일’을 예로 들어보자. ‘1초 성형네일’의 정식 명칭은 다소 어려운 ‘데싱디바 매직프레스’. 이 때문에 GS홈쇼핑의 PD 등 브랜드 마케터들은 ‘어떻게 하면 데싱디바 매직프레스를 소비자의 마음에 꽂힐 수 있게 할지’를 고민했고, ‘붙이기만 하면 아름다운 손톱을 가질 수 있다’는 제품의 특징을 극대화해 펫네임을 만들었다. 제품의 장점을 공급자 관점에서 소비자 관점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1초 성형네일’이라는 펫네임이 탄생한 거다.

소비자 관점에서 브랜드 정립해야

GS홈쇼핑 관계자의 설명이다. “공급자(납품업체)는 젤네일을 경험한 적이 있는 여성을 타깃으로 ‘네일숍보다 싸고 빠르게 젤네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판매 전략을 짰다. 하지만 회의를 하면서 공급자의 관점은 소비자 관점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젤네일을 경험한 여성’이 아닌 ‘아름다운 손을 갖고 싶어 하는 여성’으로 타깃 층이 확장됐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형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불황의 시대. 살아남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 태어난 브랜드들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본명이 아닌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내 이름은 아닌데 내 이름 같은 ‘펫네임 열풍’, 쉽고 흥미롭지만 마냥 웃을 수만도 없다. 펫네임 열풍에 숨은 불황 탓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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