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여! 스토리를 탐하라

코카콜라, 맥도날드, 에비앙에는 글로벌 브랜드라는 것 외에 또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전 세계 소비자가 공유하는 스토리와 펫네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자가 더이상 기능성만 보고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빠르게 간파해 마케팅에 적용한 기업 역량의 결과다. 마케팅도 이제 질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거다.

▲ 다수의 글로벌 브랜드가 소비자와 교감하기 위해 감성 마케팅을 펴고 있다.[사진=뉴시스]

코카콜라 vs 펩시콜라. 당신은 어떤 콜라를 더 좋아하는가. 콜라 전쟁 100년사史 속에서 승리의 기쁨은 언제나 코카콜라로 돌아갔다. 흥미롭게도 승패를 결정한 건 ‘맛’이 아니었다. 이는 1973년 펩시의 비교 광고와 1985년 뉴코크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1973년 펩시는 코카콜라 열성 소비자를 모아 놓고 ‘펩시콜라 vs 코라콜라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여기서 상당수의 참가자는 “펩시가 더 맛있다”고 손을 들었다. 펩시는 이 장면을 그대로 TV광고에 내보냈고, 미국 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위협을 느낀 코카콜라는 1985년 뉴코크로 응수했다.

뉴코크는 코카콜라가 수십만명을 동원해 임상실험을 거친 제품으로 ‘뛰어난 맛’을 부각한 상품이었다. 하지만 소비자 반응은 냉담했다. 오히려 코카콜라를 되돌리라는 항의가 잇따랐고, 몇몇 소비자는 코카콜라 회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벌였다. 결국 코카콜라 클래식의 재등장과 함께 뉴코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승패를 가른 건 ‘소비자와의 유대감’이었다. 소비자가 사는 건 탄산수에 설탕을 탄 음료가 아니라 코카콜라에 담긴 추억과 이미지였다는 얘기다. 이는 코카콜라의 독보적인 감성 마케팅 전략의 효과다.

예를 들어 빨간 모자·빨간 옷, 그리고 흰 턱수염의 산타클로스는 사실 코카콜라 회사가 자사의 빨간 로고와 흰 거품을 상징하기 위해 1931년 만들어낸 광고용 이미지다. 전세계 누구나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코카콜라 병을 들고 허허 웃고 있는 산타클로스를 TV광고에서 본 어릴 적 기억이 있을 거다. 이런 기억이 쌓인 소비자와 코카콜라 사이에는 일종의 이야기(스토리)가 생긴다.

많은 세계인들이 코카콜라에 ‘코크’라는 펫네임을 붙여 부르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더 맛있어진 뉴코크에 미국 소비자가 거세게 반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가 코크 맛의 변화를 나의 추억이 바랜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소비자와의 교감에 성공한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지난해 5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기업 브랜드 가치 평가에서 코카콜라는 560억 달러(약 64조6576억원)로 평가받으며 전 세계 브랜드 가운데 4위를 차지했다.

소비자는 상품 아닌 경험·이미지 구입

코카콜라 에피소드는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유대감이 매출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대다수의 상품이 상향평준화된 시대이기 때문에 제품력만으로 승부를 보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거다. 이제는 소비자와의 교감지점을 찾아내야만 타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판매 우위를 점하고, 롱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Rolf Jensen)도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은 부를 창조하는 원동력”이라며 스토리텔링을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어떤 상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열 ‘마스터 키’를 가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경자 가톨릭대(소비자학과) 교수는 “그래서 기업이 제품에 의도적으로 스토리를 붙이고 이것을 서브 브랜드로 만들어 마케팅에 나서기도 한다”고 말했다. 나이키가 운동화보다 마이클 조던의 ‘도전정신’을 강조하고, 할리 데이비슨이 오토바이보다는 ‘자유’를, 애플이 컴퓨터보다는 ‘세련됨’을 부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탄생 스토리로 마케팅에 성공한 글로벌 브랜드도 있다. 세계 최초의 생수 브랜드 ‘에비앙’이 대표 사례다. 에비앙은 프랑스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신장 결석을 앓던 한 후작이 이 마을의 지하수를 꾸준히 마셔 완치됐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실제로 병상에서 일어난 후작은 이 지하수 성분을 연구했다. 그 결과 에비앙의 지하수에는 알프스에서 녹아내린 만년설이 통과해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878년 프랑스 정부는 에비앙 지하수를 상품으로 정식 허가했다. 에비앙이 전 세계 소비자에게 명품 생수로 인식되는 배경에는 치료약으로 기능했었다는 탄생 스토리 마케팅이 있었던 셈이다.

마스카라로 유명한 글로벌 코스메틱 브랜드 ‘메이블린’의 탄생 스토리도 꽤 유명하다. 평범한 화학자 윌리엄스. 그는 1913년 여동생 ‘메이블’이 실연을 당해 시름에 잠기자 동생을 기쁘게 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윌리엄스는 동생을 더 예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바셀린 젤리와 분탄을 혼합해 속눈썹을 진하게 하는 제품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마스카라다.

이후 그는 동생 이름인 ‘메이블’과 ‘바셀린’을 합친 합성어 ‘메이블린’이라는 마스카라 회사를 차렸다. 동생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려는 오빠의 마음, 메이블린은 이 실제 스토리를 브랜드 이미지 전략에 활용 중이다.

▲ 소비자는 제품과의 추억·경험을 산다.[사진=뉴시스]
오랜 기간 소비자와 교감을 통해 친밀도가 높아진 브랜드의 경우엔 소비자가 사랑과 신뢰를 담은 ‘펫네임’을 붙여주기도 한다. 박재현 한국브랜드마케팅연구소 소장은 “기업(생산자)이 소비자에게 주입하는 형태인 스토리 마케팅보다 소비자 커뮤니티에서 자연 발생한 상품 펫네임이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데 훨씬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일단 상품에 펫네임이 붙으면, 그 매력이 배가돼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가 펫네임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코크’ 외에도 맥도널드는 ‘맥디스(McD’s), 버드와이저 맥주는 ‘버드(Bud)’, 휴대폰 브랜드 모토오라는 ‘모토(moto), 국제 항공 특송 회사인 페더럴익스프레스는 ‘페덱스(FedEx)’로 전 세계 소비자에게 통용되고 있다.

펫네임 없는 삼성 제품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세계 소비자에게 인지도와 친밀도를 가진 다수의 글로벌 브랜드가 탄생 스토리와 펫네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해당 기업들이 관련 마케팅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캐치해 집중했다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지난해 매출 감소 등으로 자칭 최악의 슬럼프에 빠졌던 맥도널드가 최고브랜드책임자(CBO)로 있던 스티브 이스터브룩을 CEO 자리에 앉힌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반면 국내에선 글로벌 스토리와 펫네임을 가진 기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국내 대표 글로벌 기업 삼성도 인지도에 비해 친밀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윤영수 한국브랜드마케팅협회 회장은 “다양한 마케팅 방식에 대한 경험과 전문가가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살아남으려면 마케팅 방식의 질적 성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마케팅도 이제 ‘양’보다 ‘질’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1+1상품이나 추가상품보다 감성을 ‘톡’ 건드리는 2%의 매력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한다는 얘기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te85@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