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유동성 위기

▲ 건설사들은 때만 되면 어렵다고 아우성치다가도 툭하면 입찰담합으로 도마에 올랐다.[사진=뉴시스]
분양시장에 불던 훈풍이 가시고 있다. 조만간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주장도 나온다. 늘어나는 미분양이 근거다. 이런 징조는 단순히 부동산시장 침체만이 아니라 한바탕 건설업계의 구조조정 광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건설사 대부분은 부동산 침체기를 견딜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주택 신규분양이 위축되면서 하향 안정화 경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부동산 시장을 분석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얘기다. 주택 신규분양 수요가 줄고 가격은 떨어질 거라는 얘기다.

이런 주장을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올해 들어 정부는 가계부채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제시, 지난 2월부터 주택담보대출 문턱을 높였다. 주택담보대출 거치기간을 3~5년에서 1년을 대폭 줄이고, 소득 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금리 상승 가능성을 반영해 대출 규모를 조정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전월세 상한제 도입, 기업형 임대주택인 뉴스테이 공급 확대로 인해 신규분양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공급량은 늘었다. 부동산114의 자료를 토대로 최근 NH투자증권에서 내놓은 부동산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 주택 분양ㆍ분양 예정 규모는 대략 39만1000호로 추정된다. 지난해보다 주택 공급 물량이 24.4%가량 줄긴 했지만 최근 15년을 통틀어 두번째로 높은 수치다. 지난해 주택 공급 물량은 사상 최대치인 약 62만1000호(아파트는 51만8000호)였다.

지난해 크게 줄었던 미분양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만 봐도 공급이 늘었음을 알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수도권 지역 월평균 미분양 물량은 2만4110호로 지난해 평균 1만7756호보다 35.7% 늘었다. 서울 지역도 같은 기간 월평균 미분양 물량이 704호에서 713호로 약 1.2% 늘었다. 더구나 건설사 혹은 시행사 등이 보유하고 있는 자체 물량까지 감안하면 실제 미분양 물량은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KB국민은행 가치평가부 관계자도 분양시장 위축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그는 “여름철 비수기임에도 재건축 사업추진이 활발하고, 기준금리 인하에 힘입어 재건축 진행 단지는 물론 예정 단지에 대한 기대와 투자심리가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세계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과 정부의 분양시장 과열 우려에 따른 규제조치 등으로 인해 주택시장 관망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렇게 주택 분양시장이 위축되면 건설업계에 불어 닥칠 여파가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이다. 더구나 건설업종은 현재 조선ㆍ해양 업종과 더불어 구조조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취약업종에 속한다.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의 좀비기업이 가장 많은 업종이기도 하다.

현금 바닥 난 30대 건설사

또한 지난해부터는 해외 저가수주 문제까지 불거졌다. 금융감독원이 명단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11월 밝힌 구조조정 대상 건설사만 해도 14곳(C등급 2곳ㆍD등급 12곳)에 달한다. 결국 구조조정이 임박해 있는 상황에서 분양시장까지 영향을 미치면 건설업계에는 구조조정 태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김형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부동산 시장은 이르면 하반기부터 하향 안정화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 여파로 자금여력이 안 좋은 건설사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떤 건설사들이 여기에 속할까. 더스쿠프(The SCOOP)는 시공능력평가 상위 30개(제일모직 제외로 29개) 건설사 중 유동비율이 낮은 건설사들을 추려봤다. 유동비율은 1년 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을 1년 내에 상환해야 하는 유동부채로 나눈 값이다. 유동비율이 높을수록 현금유동성이 좋고, 반대로 낮으면 현금유동성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유동비율은 기업의 지급능력이나 신용능력을 판단할 때 자주 거론되는 지표다.

결과를 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한라(50.9%), 한진중공업(63.0%), 두산건설(78.6%), 삼성물산(79.6%), 두산중공업(79.6%), 계룡건설산업(85.1%), 금호산업(87.0%), 코오롱글로벌(91.4%), 한신공영(98.6%) 9개 건설사는 유동비율이 100%를 밑돈다. 모든 유동자산을 당장 내다 팔아도 유동부채조차 갚지 못한다는 얘기다.

유동비율이 100%를 넘는 건설사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동부건설(103.8%), 한화건설(106.2%), 태영건설(108.9%), SK건설(114.5%), 서희건설(120.2%), 경남기업(130.2%), 쌍용건설(134.3%), KCC건설(135.5%), GS건설(135.7%), 대우건설(138.6%), 삼성엔지니어링(140.9%)은 유동비율이 1.5배도 넘기지 못했다.

유동비율이 가장 좋은 건설사인 호반건설(831.0%)과 부영주택(299.8%)을 제외한 모든 건설사가 유동비율 200%를 넘기지 못했다. 최근 건설업계에서 SK건설, 한화건설, 두산건설, 한라, 쌍용건설, KCC건설, 동부건설, 경남기업 등 비교적 유동비율이 낮은 건설사들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거론되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국내 아파트 브랜드를 대표하는 건설사 대부분이 취약한 상황이라는 거다.

건설업계에 불어 닥칠 구조조정 태풍보다 더 큰 문제는 건설사들은 스스로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구조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체 국내 건설사의 총 공사수주액은 157조9837억원이었고, 그 가운데 주거용 건설공사 수주액은 67조6829억원이었다.

참고로 시공능력순위 30위 건설사들이 지난해 올린 전체 매출액은 109조1913억원이다. 2014년에도 총 공사 수주액은 107조4664억원, 주거용 건설공사 수주액은 41조863억원에 달했다. 말하자면 건설사들은 정부의 주택보급 정책에 힘입어 최소 수십조원의 공사를 나눠먹기 했음에도 재무건전성은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거다.

건설업계 살리려면 구조조정 잘 해야

일부에서 이번 건설업계 구조조정 역시 조선ㆍ해운업종과 마찬가지로 경영진에 대한 책임 추궁 없이 또다시 밑 빠진 독에 혈세를 붓고, 산소호흡기를 붙여 살려내는 식으로 끌고 가지 않을지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채이배 국민의당 공정경제TF 팀장은 “구조조정을 제때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공적자금 투입과 가계부채 증가의 악순환 고리는 끊을 수 없다”면서 “때문에 재무구조를 개선한다면서 노동자를 해고할 게 아니라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부터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건설업의 위기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나왔던 얘기”라면서 “그럼에도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으니 경기불황만 탓하는 어린아이가 됐다”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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