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이야기「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

기본소득 둘러싼 오해와 반론

지난 6월 5일 스위스에서 실시한 ‘기본소득 찬반 국민투표’는 전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개념조차 낯선 기본소득을 두고 스위스에선 국민투표까지 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투표 결과는 찬성 23%, 반대 76.9%로 부결. 하지만 기본소득은 여전히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는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기본소득이란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매달 조건 없이 최저생계 이상의 생활이 가능한 금액을 지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개개인의 자산 조사나 거주지, 노동 의욕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소득이다.

불을 지핀 건 ‘기본소득 스위스 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다. 이 네트워크가 소속된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IEN·Basic Income Earth Network)’의 국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필리페 판 파레이스 벨기에 루뱅 대학교(경제·사회·정치과학부) 교수가 기본소득에 관해 쓴 책이 국내에에서도 발간됐다. 1995년 초판된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은 ‘기본소득론’을 가장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대표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판 파레이스는 이 책에서 정의로운 사회란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질적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을 의미한다. 기본소득은 이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인 것이다. 저자는 무조건적인 일정액의 현금은 물론 적절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 등 현물 지급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쯤에서 항상 등장하는 문제가 있다. 포퓰리즘 논란이다. 저자는 반론한다. 기본소득은 자연환경, 기술 진보,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게 축적된 돈,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고난 가정환경 등으로 불평등하게 부여된 편익의 일부를 좀 더 공정하게 공유하자는 제도라고 말이다.

저자는 이 주장을 4장에서 6장까지 할애해 논증한다. 4장에서는 기본소득이 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편향된 정책이 아니냐는 문제에 반론한다. 또한 최고 수준의 기본소득을 가능케 하는 재원조달 방법에 대해서도 검토한다. 5장에서는 무임승차 논란을 반박한다. 기본소득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소득을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먹여 살리는 데 쓰자는 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기본소득 제도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상호 보완성을 역설한다. 기본소득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중 어느 체제에 더 부합한 제도이며, 더 잘 기능할 것 같은지 독자에게 되묻는 식이다.

실제로 판 파레이스 교수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일부 국가나 주州에서는 이미 기본소득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독일·네덜란드·핀란드 등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 제도가 실험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에서는 1976년부터 석유 등 천연자원 수출로 얻은 수익금을 2년 이상 거주한 모든 알래스카 주민에게 배당금 형태로 분배하고 있다.

기본소득 도입 관련 논의는 국내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적용 과정에서 취지가 퇴색하긴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18대 대선 후보 시절 ‘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 연금 형태로 매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올 초부터 성남시에서 실행하고 있는 ‘청년 배당’도 기본소득 제도가 부분적으로 시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본 문제의식이 기본소득제와 맞닿아 있어서다.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둘러싼 전 세계적 논의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가계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때 기본소득 제도의 ‘A to Z’가 담긴 이 책으로 기본소득의 관점을 정립해 보는 건 어떨까. 

세가지 스토리

「누가 우리의 미래를 훔치는가」
마크 굿맨 지음 | 북라이프 펴냄

FBI 상임 미래학자이자 세계적인 국제 안보 전문가 마크 굿맨이 기술사회가 가져올 충격적인 미래 범죄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우리가 쉬지 않고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웹상에 남은 개인 데이터, 편리함을 강조한 사물인터넷, 드론과 로봇, 그리고 생체 이식 기구가 어떻게 범죄에 이용되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우리가 이 영화 같은 범죄에 맞설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제시한다.

「협상의 전략」
김연철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예멘 통일 협상이 망한 이유는? 한반도 휴전 협상은 실패 사례인가 아니면 성공사례인가. 남북문제 연구자인 김연철 교수(인제대·통일학)가 ‘협상의 역사’를 책으로 묶어냈다. 저자는 20~21세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20가지 협상의 명장면을 모았다. ‘세상을 바꾼 협상의 힘’ 과 협상을 이끈 리더들의 전략이 다양한 사례들과 함께 흥미롭게 펼쳐진다.

「김상욱의 과학공부」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펴냄

알파고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융합 교양 안내서가 등장했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가 과학 공식·법칙이 아닌 과학 시스템을 보는 방법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그는 앞으로는 ‘과학 인문학’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맞닿아 있는 과학. 과학을 가까이하면서 인문학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꾀하는 방법을 터득해 보는 건 어떨까.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