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저자에게 묻다(11) 「불황터널」 저자 박상준 교수

성장세가 멈춘 지 오래인 대한민국. 청년실업은 갈수록 치솟고, 노동인구는 떨어지고 있다. 2016년 한국은 장기불황의 문턱에 서 있던 1995년의 일본과 너무도 흡사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박상준(52) 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를 만나 불황터널에 진입한 한국의 현주소와 해법을 물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불황터널」의 저자이기도 하다.

▲ 박상준 교수는 “일본식 양적완화를 시작하면 원화 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하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사진=지정훈 기자]
✚ 우리나라가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일본과 같은 0% 성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성장으로 진입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경제활동인구, 특히 젊은층이 줄고 있습니다. 노동력과 소비자가 함께 주는 셈입니다. 생산성도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경기가 신통치 않다 보니, 금리를 계속 내리고 있는데도 기업의 투자나 가계의 소비가 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물가상승률도 제로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불황 초기에 겪었던 현상과 비슷합니다.”

✚ 불황 초기 일본의 경제상황은 어땠나요?
“경제가 저금리에 반응하지 않았어요. 통화량을 늘리는데도 물가가 상승하지 않았죠.”

✚ 아베노믹스와 같은 양적완화정책이 한국에선 통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근거를 설명하신다면.
“양적완화는 통화의 신뢰를 떨어뜨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려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원화는 위기가 올 때마다 폭락합니다. 일본식 양적완화를 시작하면 원화가치가 걷잡을 수 없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베노믹스를 한국에 적용하면 너무나 위험한 정책이 되는 겁니다.”

✚ 양적완화는 디플레이션을 극복하는 데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옳습니다. 양적완화는 디플레이션으로 고생하거나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는 나라를 위한 처방입니다. 한국은 아직 디플레이션 단계로 진입하지 않았습니다. 양적완화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쓸 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 만약 일본처럼 한국도 장기불황의 국면에 진입했다면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 게 현명하다고 보시나요?
“일본은 물론 다른 많은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정부재정은 튼튼합니다. 지금은 정부지출을 늘리는 데 과감성을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단기적 경기부양을 위한 일회성 정부지출은 조심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예산만 낭비됐다는 사실을 일본이 잘 보여줬죠. 정부지출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금리에 반응하지 않는 한국

✚ 예산을 집행한다면 어디에 써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우선, 육아 보조에 재원을 써야 합니다. 노동력이 줄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우수한 여성인력이 사회에서 도태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가계소득이 늘어야 소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청년실업 해결에 재원을 써야 합니다. 물론 인구ㆍ고용구조상 정부 정책만으론 이 문제를 해결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데 재원을 활용하는 것을 주저해선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기본적 생계가 보장될 수 있는 복지정책이 필요합니다. 모든 노인에게 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거나 모든 학생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사업이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당해도 당장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주는 복지를 지향해야 합니다. 이는 일본이 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본의 실패는 무엇인가요?
“일본의 소비가 위축된 이유는 고용~노후~연금 체계의 불안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노령층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인한 노후 불안, 종신고용이 갑자기 사라진 사회에 대한 불안, 그리고 연금 불안 등 3대 불안이 소비절벽을 유발했다는 겁니다.”

✚ 취업 때문에 고민하는 한국의 수많은 취준생들에게 조언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일본에 비해 상당히 높습니다. 청년인구가 줄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좋은 일자리가 감소했다는 것도 영향을 미치는 듯합니다. 300인 이상 기업에서 40%가 ‘간접고용ㆍ기간제’라는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만약 한국에서 취업이 힘들다면, 한국에서만 취업을 고집하지 말고, 외국으로 나가서 10년 정도 경력을 쌓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후 한국으로 유턴한다면 훨씬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될 겁니다.”

✚ 장기불황에 진입하는 한국의 국민은 과연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냉정하게 말해 한국경제의 미래는 개별 소비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정부 정책과 대기업이 좌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는 게 아닐까요? 한국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정책을 만들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해외서 취업하는 것도 괜찮아

✚ 지도자는 어떤 경제철학을 갖고 있어야 할까요?
“여전히 단기적 경기부양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거기에 야합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고도성장을 약속하거나, 재원에 대한 방책 없이 복지만을 약속하는 지도자들도 있죠. 저는 저성장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생존할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두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도자를 뽑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도 경제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 박상준 교수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 경제 상황이 어떻게 변했다는 건가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는 사회에선 부동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지 않습니다. 노령인구가 늘고, 가정의 규모가 작아지는 사회에서 넓은 평수의 아파트 수요는 감소할 수밖에 없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의 부동산 가격은 유지되거나 오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공산이 매우 크다는 겁니다. 이런 변화들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tigerhi@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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