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설국열차 ❶

▲ 설국열차는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뷔페처럼 나열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935만명이라는 흥행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출구 없는 온갖 모순과 병폐들을 뷔페식당처럼 나열한 스토리와 미장센(mise en sceneㆍ연출)은 낯설고 무엇부터 음미해야 할지 조금 난감한 게 사실이다.

설국열차는 폐소공포증이 있는 관객이라면 관람이 불가능할 정도로 기차라는 비좁은 공간 속에서 모든 서사가 진행된다. 관광버스의 좁은 통로에서 앞뒤로 스텝을 밟으며 집단막춤을 추는 행락객들의 모습만큼이나 기이하고도 숨 막힌다. 특히나 ‘잉여 쓰레기 인간’들이 모여 있는 꼬리칸의 정경은 단연 최고다. 집단으로 사육되는 불결한 개돼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최근 어떤 교육부 고위 관리가 과감하게 주창한 ‘개돼지 민중’의 격리관리 조치가 충실하게 공고화된 공간이다. 바퀴벌레를 원료로 만든 단백질 한 덩어리씩만 먹여주면 꼬리칸의 ‘쓰레기’들은 만족한다. ‘개돼지론’을 설파하는 1%의 교육부 고위관리는 이 미장센에 흐뭇할지 모르겠지만 99%의 관객은 고통스럽다.

영화는 인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지구온난화에 지친 인간들은 CW7이라는 가상의 화학약품폭탄을 대기권에 발사ㆍ폭발시킨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기온이 너무 내려가 빙하기가 닥치고 인류는 멸망 일보 직전에 내몰린다.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아인슈타인은 원자폭탄을 의도하지 않았고,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노벨도 살상무기를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은 엘리트든 민중이든 그들의 의도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설국열차’는 관객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에 대한 공감이 10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들였다.

영화가 ‘설국열차(Le Transperceneige)’ 라는 동명의 프랑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사실도 흥미롭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자유ㆍ평등ㆍ박애’라는 정신으로 신분제로 대표되는 구舊체제를 종식시키고 근대시민사회의 새로운 세상을 열었던 인류사적인 사건이었다. 프랑스 혁명이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린 지 200여년이 지난 오늘, 과연 프랑스를 비롯한 세상은 프랑스 혁명 주역들의 의도대로 변했을까.

▲ ‘영어 쓰레기 인간’들이 모여 있는 꼬리칸의 정경은 사회와 다르지 않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교육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주무관리가 프랑스 혁명 이전의 고위사제(1신분)와 귀족(2신분)들이나 했을 법한 ‘개돼지 민중론(3계급)’을 펼치고 신분제 공고화를 외치는 세상이다. ‘자유ㆍ평등ㆍ박애’의 정신을 상징하는 삼색기로 뒤덮인 프랑스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 혁명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원작만화 ‘설국열차’는 아마도 혁명 이전의 사회로 회귀하는 듯한 프랑스 사회에 대한 개탄과 두려움, 그리고 또다른 혁명을 향한 꿈의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지 200년이 흐른 1989년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신봉하는 세계인들의 축제였다. 프랑스의 유력매체인 르몽드(Le Monde)는 혁명기념 연중 기획기사로 프랑스 혁명의 의의와 평가에 관한 전세계 지도자들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그중에는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이며 생존한 혁명가인 덩샤오핑鄧小平도 포함돼 있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아직 200년밖에 안 된 일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덩샤오핑은 세상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의 종합체이며, 역사의 진행은 변화무쌍하고 끊임없이 회귀한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나보다. 세상이 누군가의 의도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 사회가 누구의 ‘의도’처럼 신분제 사회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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