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결정, 그 이후…

▲ 사드 배치는 공론에 부쳤여야 했지만 비밀ㆍ일방주의 정책 추진으로 논란만 키웠다.[사진=뉴시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논란은 한민구 국방부장관 말대로 ‘일개 포병중대’를 배치하고 말고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단순히 국방만의 일도 아니고, 외교 문제이자 경제 문제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해 안보 환경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외교 정책의 방향성과 경제 여건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을 외교정책의 핵심 의제로 제시했다. 이 모두가 중국ㆍ러시아와의 유대 강화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한반도 사드 배치에 중국과 러시아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더이상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중국ㆍ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관계가 엉클어지면 북방경제 협력을 통한 우리의 활로 찾기도 막힌다.

중국에서 들려오는 경제 보복 목소리도 심상찮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구두로만 항의할 게 아니라 상대를 아프게 해야 효과가 있다” “사드 배치를 적극 추진한 정부 관계자ㆍ기관과 관련 한국 기업은 중국 왕래와 경제교류를 차단해야 한다”는 논평과 사설을 쏟아냈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인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국과 교역하지 말라거나 중국인의 한국 여행을 막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민간이나 지방정부에서 중국 내 분위기를 살피며 ‘알아서’ 교역을 줄이거나 여행을 자제할 수 있다. 수입 농수산물에 대한 검역 강화나 통관 지연, 안전ㆍ환경 규제 강화 등 비관세 장벽을 통한 보복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사드 배치 결정 이전과 다른 중국의 태도 변화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중국을 방문한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의 지난 14일 면담이 전날 저녁 중국의 불참 통보로 무산됐다. 남 지사는 중국을 방문하기 전에 “한반도 사드 배치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라디오 인터뷰를 했다.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가 먼저 휴직하긴 했지만, AIIB의 한국 몫 부총재 자리가 없어진 시점도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발표한 8일이다. AIIB는 이날 재무담당 부총재(CFO)직을 신설, 후보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면서 홍 부총재가 맡은 투자위험관리 부총재 자리를 국장급으로 강등했다. 4조원대 분담금을 내고 마련한 국제기구 부총재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10월 개장한 뒤 열달 째 개점휴업 상태였던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소재 ‘중조中朝(중국과 북한)변민 호시무역구’가 최근 통관 시범운영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호시무역구는 올 4월부터 북한 기업들이 입점하려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등에 따른 대북제재로 정상 가동이 미뤄져왔다. 북중北中 접경지역 주민들이 하루 8000위안(약 145만원) 이하 거래에 대해선 관세 없이 국경무역을 할 수 있는 무역제도인 호시무역의 정상 가동은 곧 북중 관계의 개선을 의미한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다. 연간 경상수지 흑자의 40% 이상을 중국과의 거래에서 얻는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1300여만명 중 600여만명이 중국인이다. 교역 및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중국 내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은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그저 지켜볼 따름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큰 보복성 조치는 있지 않을 것”이라며 낙관론을 폈다.

사드 배치가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진즉 공론에 부쳤어야 했다. 북핵과 미사일 방어용임을 설명하고 국민과 주변국을 설득했어야 했다. 해당 지역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후속 대책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비밀ㆍ일방주의 정책 추진으로 논란을 키웠다. 안보ㆍ외교ㆍ경제가 얽힌 복합적인 문제에 부처간 조율도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 총리와 국방장관이 사드 배치 지역으로 발표한 경북 성주를 찾았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다.

첨단무기 하나 더 들여온다고 국가와 국민이 안전해지지 않는다. 탄탄한 경제력과 굳건한 국방력, 유연한 외교력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들은 제대로 일하고 있는가. 전면적인 인적 쇄신과 함께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국회 동의를 받는 절차가 필요해 보인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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