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살돈시대 ❹

▲ 야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해가 중천에 뜨면 우리는 배가 고파서 일어난다. 다이어트 전문가 박 강사는 작은 책상에 앉아 연신 전화를 걸어댔다. 산골이지만 우리는 배달의 민족 아닌가. 전화 한통에 피자며 냉면이며 족발이 득달같이 달려오는데 짜장면에 군만두가 빠져 있으면 성질 급한 박 강사는 철가방 오토바이를 짧은 다리로 걷어차곤 했다. 그는 꽃돼지 사육에 흥미를 느끼는 듯 열심히 음식을 주문했다.

60일간의 생활 패턴은 지극히 단순하고 반복적이었다. 정오까지 잠을 자고 점심에 폭식한 뒤 한잠 즐긴 후 간식을 먹고 저녁 식사를 한다. 비디오를 감상한 후 족발·치킨 등 야식을 먹고 잠들기 직전 흰죽으로 입가심을 하면 우리의 하루는 끝이 난다. 박 강사는 살이 무섭게 붙어가는 우리의 몸을 훑어보며 “야식이 가장 과학적인 비만의 기전임이 입증되었네?”라며 조롱하곤 했다. 심야 시간대의 기름진 음식이 소화기관의 휴식을 방해하고 그것은 곧 기초대사량의 저하로 이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강사는 끊임없이 우리를 먹이고 비웃으며 욕을 해댔다. “쯧쯧 게걸스럽게도 먹는다. 돈 1억 벌려다 죽는다 이것들아! 고만들 처먹지?” 뭐 이딴 식이다. 오기가 발동한 우리는 먹는 속도를 더욱 높인다. 특히 박 강사는 우리 꽃돼지들의 하루를 마감하는 식사로 흰쌀 죽을 주문하곤 했는데 죽을 들이켜는 우리를 보고 미친 듯이 웃어댔다. “저작(씹는 행위)이 필요 없으니 너희 몸이 포만감을 느끼기도 전에 먹을 수 있을 거다. 양껏 들이마시고 북북 쪄라!”

언젠가는 박 강사가 다이어트 총괄 김 실장과 나누는 이야기를 우리가 모두 엿듣게 되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박 강사 왈. “야식이 살찔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가 있지요. 자정 무렵에는 떡 하나만 먹어도 살찌는 소리가 들릴 정도인데, 죽을 선택한 이유는 씹지 않고 들이켤 수 있으니 떡이나 빵보다 훨씬 많이 먹을 수 있거든요. 정제된 탄수화물이라 소화 흡수가 빠른 데다 급하게 먹어대니 인슐린이 샘솟듯 넘쳐날 겁니다. 췌장은 엄청 괴롭겠지만 살찌는데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일본의 스모 선수들이 즐기는 방식이지요.” 김 실장 왈 “두달 안에 얼마나 비만해질 수 있는지 대표님을 포함해 모두 궁금해합니다.” 박 강사 왈 “탄수화물을 집중적으로 먹으니 인슐린을 계속 쓸 수밖에 없지요. 결국 살을 찌게 하는 인슐린을 쉼 없이 사용하는 식습관입니다.”

그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악마 같은 박 강사의 논리는 결국 살을 찌우기 위해 당 대사를 조절하는 췌장의 베타 세포를 휴식기 없이 돌려야 한다는 거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자가 그 능력을 악하게 활용할 때 세상은 혼란스러워진다. 하지만 우리도 그를 원망할 수는 없다. 돈 1억원에 눈이 멀어 자청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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