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이야기「가족은 잘 지내나요?」

감정이 시장에서 팔리는 시대

청소 대행업체가 호황이란다. 저녁은커녕 잠잘 시간도 사수하기 어려운 대다수 한국인에게 집청소는 또다른 고역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매일 아침밥을 배달해주거나 세탁물을 직접 수거해가는 가사 서비스는 이미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예전과 비교해 한가지 달라진 점은 일반 가정집에서도 이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는 점이다. 특별히 부유하지 않아도, 자취하는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가사노동은 서비스의 영역이 돼가고 있는 거다. 한편에선 이 현상을 놓고 가사 노동이 마침내 그 가치를 인정받아 노동시장의 영역에 들어섰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가족 해체 현상의 징후로 분석한다.

‘감정사회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앨리 러셀 혹실드 캘리포니아대학교 명예교수(버클리 캠퍼스 사회학과)의 입장은 후자다. 그는 이 현상을 ‘패밀렉시트(Familexit)’라고 정의한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먹고살려다 보니 집안일 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빠졌다’는 이유로 도우미에게 가족의 일을 대신하게 하는 일이 넘쳐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혹실드 교수는 그 원인을 자유시장 체제에서 찾으면서 “자유시장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시장과 가정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분석한다. 가족관계와 사랑마저 시장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얘기다. 가사·돌봄 노동이 시장 구매 서비스로 탈바꿈한 ‘임대 엄마’ 사업이 대표 사례다. 저자가 인터뷰한 미국의 한 사업가는 전업주부 시절 자신이 해오던 가사·돌봄 노동을 아이템으로 사업에 나섰다. 상호명 ‘임대 엄마’는 집 청소·옷 손질·음식하기·애들 보살피기·정원 가꾸기 등 가사·돌봄 노동에 가격을 매겼다.

저자에 따르면 가족 간에 오가는 ‘감정’도 아웃소싱의 대상이 됐다. 가사 도우미·아이 돌보미 등 전통적 서비스는 물론 러브 코치·친구 찾기 서비스·웨딩 플래너를 비롯한 맞춤형 서비스가 우리의 일·사랑·삶을 대신하고 있다는 거다. 혹실드 교수는 이 대목에서 단호하게 말한다. “그야말로 가족, 나와 우리의 삶은 시장이 됐다.”

더 큰 문제는 패밀렉시트가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살고 있는 미국의 경우, 감정노동이 필요한 영역에선 대체로 이주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가난한 남반구 사람들은 부유한 북반구(선진국)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와 부모를 두고 종종 고향을 떠난다. 심지어 인도의 상업 대리모는 북반구 선진국에 사는 불임 부부에게 ‘자궁’을 빌려준다. 하지만 이렇게 번 돈으로도 그들은 부유한 삶을 살지 못한다. 그 돈은 가족을 겨우 먹여 살리는 데 사용될 뿐이다. 어쩌면 이 아이들 역시 이주노동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혹실드 교수가 패밀렉시트 해결 방법으로 제시한 대안은 ‘공감의 확산과 공동체성 회복’이다. 그는 “사회계층과 인종과 성별의 장벽을 넘어 공감해야 한다”면서 “자유시장에 좋은 것이 가족에게 모두 좋을 리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인간의 감정만은 시장 규칙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감정 노동’이란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대표적인 감정 사회학자의 조언에 고개에 끄덕여 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감정 아웃소싱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가족의 실체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넘겨보자. 

세가지 스토리


「누운 배」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사 펴냄

회사를 주제로 한 리얼리즘 장편 소설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조선소를 무대로 회사의 본질과 회사원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풀어냈다. 이야기는 조선소에서 진수식이 끝난 배가 갑자기 쓰러지며 시작한다. 멀쩡히 서있던 배가 왜 쓰러졌을까? 하지만 소설이 집중하는 건 ‘왜’가 아닌 ‘책임자 없는 상황’이다. ‘배가 눕는다’는 상징이 인상적이다.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 반비 펴냄

17년 전,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 사건.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이 책의 저자다.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을 설명하고 예방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우울증과 자살, 살인의 연관성을 이끌어내는 등 유사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써내려간 문장들이 깊은 울림을 준다.

「천천히 서둘러라」
가게야마 도모아키 지음 | 흐름출판 펴냄


도쿄 변두리에 있는 ‘쿠루미도 커피’는 일본 고객 만족 1위 카페다. 비싼 가격에도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이 책은 매출과 이익 증대를 목표로 소비자를 이용하지 않고, 지역사회와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쿠루미도 카페의 경영철학을 들려준다. 쿠루미도 카페에서 일본산 고급 호두를 왜 소비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지 궁금하다면 책장을 넘겨보자.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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