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의 슬픈 경제학

검은 봉지 속에 꼭꼭 감춰져 있던 ‘생리대’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저소득층 가정의 청소년들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으로 버텨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하지만 생리대에 숨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고작 6g밖에 되지 않는 이 패드엔 불투명한 가격구조, 시장 독과점 등 한국경제의 온갖 병폐가 도사리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생리대 속에 감춰진 경제학을 파헤쳐봤다.

▲ 여중생‘깔창 생리대’이야기에서 촉발된 생리대 가격 거품 논란이 한창이다.[사진=지정훈 기자]

취업준비생 강다슬(23·대학교 4학년)씨. 고시원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다슬씨는 요즘 아르바이트와 취업준비를 병행하느라 체력이 남아나질 않는다. 매주 월수금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화목에는 과외를 뛴다. 그렇게 해서 손에 들어오는 돈은 월 70여만원. 고시원비 35만원과 전화요금, 식비, 인터넷 수강료 20여만원을 지불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그러다보니 매달 사용해야 하는 생리대 비용도 부담스럽다. 그는 “생리대 브랜드나 기능을 따져 고를 처지가 못 된다”며 “소셜커머스에서 가장 저렴한 생리대를 대량 구입하지만, 그렇게 구입한 생리대마저 아껴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서글프다”고 하소연했다.

여성 필수품인 생리대 가격 논란이 뜨겁다. 한 여중생의 일명 ‘깔창 생리대’ 사연이 일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생리대 가격에 거품이 낀 게 아니냐’는 논란에 불이 붙었다. 가장 먼저 대두된 건 기본권 문제다. 생리대는 대다수 여성이 본인 의지와는 무관하게 사용해야 하는 필수소비재이기 때문이다. 사용 기간을 따져보면 사춘기부터 완경기까지 약 40년이다. 생리대에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생리대 논란 속에는 ‘기본권 문제’만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니다. 이 패드 안에는 한국경제의 병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불분명한 가격 = 생리대에 숨은 첫째 병폐는 가격 인상의 명분과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이다. 원재료 가격은 떨어지는 데 제품 가격은 오르는 이상한 현상이 생리대에서도 노출되고 있어서다. 생리대 업체들은 그동안 프리미엄 소재와 신기술 적용에 따른 원가 인상을 명분으로 매년 7~8%씩 가격을 올려왔다. 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4월 생리대 소비자 물가지수는 2010년 4월보다 25.6% 올랐다. 생리대와 같은 재료(펄프)를 사용하는 기저귀(8.7%)와 화장지(5.9%)의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보다 각각 2.9배, 4.3배 더 뛰었다.

허투루 봐선 안 되는 생리대 논란

더 큰 문제는 생리대 제조에 사용되는 펄프와 부직포의 수입물가지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단체협의회의 자료를 보면, 2010년 4월~2016년 4월 펄프는 29.6%, 부직포는 7.6% 떨어졌다. 전민선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활동가(물가감시센터)는 “생리대 원재료값이 하락하고 있는데도 유한킴벌리 등 생리대 제조업체들은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이유로 수년간 가격을 올려왔다”며 “이번 기회에 제대로 공론화하지 않으면 생리대 업계의 가격 인상은 반복될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여성건강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걸 지적하긴 힘들다”면서도 “기업이 소비자에게 생리대 가격이 오르는 이유와 근거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는 건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인지 국내 생리대 판매가격은 세계에서도 가장 비싼 수준이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리대의 낱개당 가격은 331원으로 조사됐다. 이를 한달 평균 사용량(40개)에 대입하면 약 1만3240원이다. 1년(480개)으로 환산하면 15만8880원에 이른다. 반면 해외에서 판매되는 생리대 가격은 우리보다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리대 1개당 일본은 181원, 미국은 181원, 덴마크는 156원, 캐나다는 202원, 프랑스는 218원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보다 적게는 113원, 많게는 150원 싸다.

이런 논란에도 국내를 대표하는 생리대 제조업체 유한킴벌리는 지난 7월 1일 ‘좋은느낌’ 리뉴얼 버전의 가격을 인상했다. 그러면서도 생리대의 성분과 제조방식, 원가는 공개하지 않았다. 생리대 논란이 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 독과점 = 둘째 병폐는 독과점의 문제다. 김승희(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국내 생리대 시장은 유한킴벌리(55%), LG유니참(23%), 한국P&G(15%)가 독점하고 있다. 특히 유한킴벌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장점유율 50%를 초과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군림해 왔다. 생리대 업계에 유한킴벌리가 가격을 올리면 2·3위 업체가 따라 인상하는 ‘가격 도미노 현상’이 만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리대 가격 문제 공론화해야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유한킴벌리가 2011년 6월과 2013년 6월 가격을 인상하자 LG유니참, 한국P&G도 가격을 올렸다”면서 “사실상 시장을 지배하는 업체들이 생리대 가격을 맘대로 쥐고 흔들고 있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무책임한 태도가 생리대 시장의 독과점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공정위는 시장구조가 독과점이고 사업자가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을 경우, 이를 해소해야 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조사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하면서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복잡한 유통구조 = 셋째 병폐는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유통구조다. 유통채널마다 생리대 판매가격이 천차만별이라서 가격 문제를 꼬집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한킴벌리의 대표 브랜드 ‘좋은느낌 매직쿠션(울트라) 중형사이즈 18개입’을 기준으로 유통채널별 가격을 비교해봤다.

▲ 생리대 시장의 독과점 구조와 유통과정의 고질적 병폐가 생리대 판매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 7월 14일 기준, 서울 목동 소재 H백화점에선 해당 제품의 가격이 5900원이었다. 백화점 바로 옆에 위치한 H대형마트 판매 가격은 5350원(36개입 제품 기준 절반 가격)으로 백화점 가격보다 550원 저렴했다. 마트 건너편에 있는 G편의점에선 이 제품을 8500원으로 가장 비싸게 팔고 있었고, 근처 W드럭스토어에서는 3350원(1+1행사·6700원)으로 가장 저렴하게 판매했다. G편의점과 W드럭스토어의 제품 판매가격 차이는 무려 5150원으로 18개입 제품 1개를 더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 판매 가격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얘기다.

전민선 활동가는 “유통채널마다 가격이 일정하지 않고, 할인판매율도 높다는 건 현재 생리대 가격이 적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기업이 가격 규제가 허술한 틈을 타 암묵적으로 담합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정부의 허술한 관리와 기업의 부문별한 이윤추구 속에서 소비자만 권익을 침해받고 있다는 거다.

소비자 단체들은 “독과점·유통마진율 등 한국경제의 병폐를 해결해야 생리대 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면서 “생리대의 원가 등 가격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함은 물론이다”고 주장한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지난 2004년 생리대의 공공재적 성격이 인정돼 면세조치가 단행됐지만 소비자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리대를 구입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6g 무게의 작은 생리대가 한국경제에 ‘돌직구’를 날리고 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더 늦으면 생리대 논란은 또 세상에 묻힐지 모른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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